노중석 시조집 ‘백비(白碑) 앞에서’(동학사)가 발간됐다. 197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가작,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온 노중석 시인의 ‘비사벌 시초(詩抄)’, ‘하늘다람쥐’, ‘꿈틀대는 적막’에 이은 네 번째 시조집 ‘백비(白碑) 앞에서’가 발간된 것.
정선현대시조 05로 발간된 ‘백비 앞에서’는 ‘직지천의 봄’, ‘아침 들판’, ‘혼자 가는 길’, ‘동구 밖 느티나무’, ‘옛 벼루를 어루만지며’ 등 66편의 시조가 5부로 나눠 편집됐다.
한 획 한 글자도 새겨 넣기 두려워서/ 아득한 세월 속에 비문(碑文) 없이 세운 비석/ 돌 속에 숨은 글자가 침묵으로 웅변하네// 지극히 청백한 삶 누(累)가 될까 염려하여/ 산새들은 이곳에 와 맑고 곱게 노래하고/ 달빛은 말없이 앉았다 흔적 없이 떠나가네
표제 시조 ‘백비 앞에서’ 전문이다.
노중석 시조집 ‘백비 앞에서’ 작품 해설은 ‘시조21’ 발행인 민병도 시조시인이 썼다.
민병도 시인은 ‘경전에 오르지 않은 바람 읽는 법’ 제목의 해설에서 이렇게 높이 평가했다.
“그의 시어 앞에 눈을 감으면 달빛이 그려내는 봉창의 그림자가 보이고 단계연 먹물에 잠기 채 벙그는 설중매 꽃망울이 보인다. 그의 행간에 귀를 대면 연잎에 구르는 밤 빗소리 들리고 안개 속을 뚫고 들려오는 새벽 물소리가 들린다. 그의 시조에서는 화려한 꽃이 아니라 꽃 피운 흙을 만날 수 있고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가 아니라 기러기가 날아갈 하늘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시조는 섣부른 글자가 함부로 오르지 못한 빗돌이요. 어기찬 바람 앞에 잎을 떨구고 선 겨울나무의 품새다.”
노중석 시인은 ‘내 고향 창녕’ 제목의 시인의 말을 통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구구절절 애틋하게 3쪽에 걸쳐 썼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석동)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로 시작해 “동쪽을 바라보면 해와 달을 토해내는 화왕산이 우뚝 솟아있고 서쪽에는 수중 생물들을 기르고 온갖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 주는 우포늪이 나직이 엎드려 있다”고 소개했다.
“내 추억의 배경일 뿐만 아니라 그리움의 대상인 아름다운 산천은 이 세상 어떤 명승지보다 아름다운 곳이다”며 “고향에 가면 따오기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시인의 말 마무리 부분을 이렇게 썼다.
“누가 ‘호마(胡馬)는 언제나 북쪽 바람을 향해서 서고 월(越)나라에서 온 새는 나무에 앉아도 남쪽을 향한 가지를 골라 앉는다’고 했던가. 오늘도 먼 남쪽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고 콧등이 시큰하게 했다.
예술가곡모음 ‘그 사랑’, 서예집 ‘맑은 여울 따라’ 등을 발간한 노중석 시인은 오류동인으로 활동했으며 그동안 금복문화상(문학), 효원문화상(서예), 경상북도문화상(문학), 이호우시조문학상, 대구시조문학상, 행촌문화상을 수상했고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18쪽 분량의 양장본 노중석 시조집 ‘백비에 서서’ 책값은 13,0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