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찾아왔다.
남들이 고향에 가니 안 갈 수도 없고 고향에 가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곳에도 돈 많이 번 사람 성공한 사람들의 세상이다. 남들은 취직도 잘도 하고 장가도 잘도 가는데 캥거루족이 되어있는 아들은 방콕이 되어 두문불출이다.
추석이 되어 남들은 선물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병락씨 집에는 얼굴 내미는 사람 하나 없다. 마누라 보기에 자존심이 상한다.
“여기가 185번지입니까?”
“네 맞습니다.”
드디어 이병락씨 집에도 선물이 왔다. 마누라 입이 함지박만하다.
“대일기업 김 사장 댁이 맞습니까?”
대기업 사장 사모님치고 몰골이 너무 초라하여 큼직한 선물을 들고 있는 배달원이 다급한 소리로 묻는다.
마누라 입이 금방 뾰로통해졌다. 같은 번지가 몇 집 있기 때문에 헛 손님이 많다. 마누라 잔소리가 또 시작되었다.
“삼불출(三不出)이 무엇인지 알아요? 명절 때 선물 못 받고, 선거 때 돈 못 먹고, 로비자금 구경 못하고…….”
이병락씨도 화가 났다.
“이 세상에 순수한 선물이 몇 %나 되는지 알아요? 부담되는 선물은 안 받는 것이 좋아요. 물고기가 미끼에 유혹되어 죽는 것도 몰라? 낚싯밥에 걸려 개병신되고 ‘먹었다 안 먹었다’ 모가지가 오락가락하는 높은 사람 어디 한둘인가?”
드디어 마누라 부아가 터졌다.
“아이고, 미끼도 좋고 독약이라도 좋으니 제발 명절 때 남들처럼 선물이라도 받는 인물이 되어 봐요.”
“이번 추석에 봉급 못 받는 근로자가 몇 명인지 알아요. 우리는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야.”
“저러니까 만날 요 모양 요 꼴이지, 땅 넓은 줄은 알아도 하늘 높은 줄은 모르네. 밑에만 보고 다니지 말고 높은 곳 좀 보고 다녀요. 남들은 저렇게 호화판인데 우리만 요 모양 요 꼴이니.”
“…….”
김병락씨 어릴 때는 술이란 막걸리뿐이었다. 어쩌다 소주란 것이 있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술이고, 그것보다 더 최고급 술은 ‘월계관’이란 정종 술이 있었다. 한때 명절이 되면 아무리 가난해도 정종 술 한 병 사들고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대유행을 했다.
콩나물시루같이 그 복잡한 완행열차를 타고 혹시나 깨어질세라 조심조심하여 기차에 내려 또 20리를 걸어 집 앞에 도착했는데 어린 조카란 놈이 삼촌을 보고 좋아서 정종을 받아들고 뛰다가 사립문 앞에서 나자빠지는 바람에 그람 박살내고 말았다. 얼마나 정성이 담긴 귀하고 아까운 술인가? 지금도 정종만 보면 그 생각이 난다.
지금은 술도 흔하고 과일도 흔하고 고기도 흔하다. 참으로 살기 좋아졌다. 그러나 삶의 질은 그때보다 못하다. 마음이 편치 못하기 때문이다. 빚내어 공부시킨 자식은 놀고 있고 갈수록 장사는 안 되고 직장은 언제 목 날아갈지 불안하다. 정치 불안, 사회불안, 거기다 코로나19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백화점에 가 봐요. 추석 선물로 5백만 원짜리 와인에다, 1킬로 백만 원 하는 송이버섯에다, 2백만 원짜리 굴비에다…….”
이때 이웃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빚은 송편을 가지고 왔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정으로 주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짜 선물이다.
“부부 싸움하는데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마누라는 추석만 되면 바가지 병이 도져요. 추석이 끝나면 금방 나아요.”
“설에는 병이 나지 않습니까?”
“설에는 회사에서 선물세트 하나 나오기 때문에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이것이 우리 서민의 추석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