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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칼럼- 껍데기는 가라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1.02.23 13:38 수정 2021.02.23 13:38

정선기(시인·전 부산일보 논설주간)

어느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고 절규했다.
“껍데기는 가라/…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권위의 허물, 곧 권위주의를 의미한다. 권위가 권위주의의 허물을 벗을 때 진정한 권위가 살아난다. 권위란 부모가 자식에 대한, 교사가 학생에 대한, 권력자가 국민에 대한 관계와 같은 ‘인간 내면 관계의 기능’이다. 권위주의는 인간 개개인의 발전을 통제하고 제한하기 위해 인간을 순응의 모델로 만들려고 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사랑(love)이 아닌 힘(power)을 바탕에 두고 있다. 또 권위주의는 다수를 지배하기 위한 소수의 목적을 위해 기여하며 그를 위해 관료적 구조를 발전시키고 보통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각종 법과 규제를 부여한다.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배격하고 ‘권위’(Authority)는 인정해야 한다. ‘권위’자체를 부정한다면 이 사회나 국가는 혼란과 무질서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권위주의는 곧 독재, 횡포, 교만, 허세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배격해야 하지만 권위는 사회존립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포용해야 한다.

우리는 ‘권위’에 대한 개념정리의 필요성을 느낀다. 권위는 도대체 무엇인가. 미국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권위를 한편으로는 ‘권력’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설득’이라고 규정했다. 권력관계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의 말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물리적 제재, 즉 폭력이 동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복종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권위의 경우에는 폭력이 전혀 전제되지 않을뿐더러 폭력이 전제되는 순간 그 권위는 실추되고 만다. 반면 설득은 동등한 입장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의 이성에 호소하면서 상대방이 자신의 의사에 따르도록 하는 경우를 말한다.

오늘날 권위의 상실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권위가 상실된 데 원인이 있다. 거짓말 정치로 인해 “세상에 아무 ×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권위불인정 사회가 되었다. 대통령의 말도 믿을 수 없으며, 대법원장의 말도 거짓투성이며, 장관 국회의원 교육자의 말도 믿지 못한다. 가치파괴현상이 지지자들 눈치 보는 나약한 지도자, 정치에 놀아나는 줏대 없는 판-검사, 지당하외다를 외쳐대는 허수아비 장관, 파당싸움만 일삼는 줄서기 국회의원 등 권위상실자를 양산하고 있다.

인류사회의 보이지 않는 질서를 형성해 온 󰡐권위󰡑의 복원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과제다. 우주화시대, 정보화시대의 도래로 초래된 계급구조의 파괴는 동시에 권위의 상실을 가져왔고 그로 인해 건전한 권위를 통한 사회의 안정이라는 특성을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그 같은 권위의 회복은 장차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있어 보다 자신감을 갖게 하고 두려움을 덜어줄 수 있다.

미국의 유진 케네디 교수와 사라 찰스 교수는 ‘권위’는 미래사회에 닥치게 될 인류불안의 해소를 위한 유일한 방편으로 상실된 권위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권위는 지위나 직책에 관계없이 인품이나 학식 능력이 뛰어나 타인이 스스로 신뢰하고 승복하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는 권위는 사라지고 권위주의만 난무하고 있다. 권위주의란 직위 권력 경제력 등 우월한 요소를 내세워 남을 억지로 따르게 하거나 지배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권위주의는 사람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조직을 황폐화시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주의가 아닌 권위이다. 진정한 권위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학식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남의 인권을 존중하고 겸손할 줄 아는 데서 생겨난다. 껍데기들만 우글거리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너도나도 권력에 빌붙어 아부를 일삼으며 청렴성 참신성을 내세우는 자들의 껍데기를 벗기는 일을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권위를 상실한 껍데기는 가라. 허위와 위선과 거짓은 가라. 우리는 진정한 권위를 회복한 진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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