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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나는 ‘다문화 엄마’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0.09.14 15:25 수정 2020.09.14 15:25

박경미(수필가·김천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국어 강사)

올해 내 나이 쉰일곱, 난 아직도 아들 딸을 낳고 있다. 그 나이에 아직 출산이 가능하냐고? 물론 믿지 않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30년 전, 28년 전 두 딸을 낳고 20년 가까이 아이가 없었지만 10여 년 전부터 다시 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법이 뭐냐고?

나는 2009년부터 지방 중소도시에서 결혼 이주 여성들을 가르치고 있는 다문화센터 소속 한국어 강사다. 딸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고 난 뒤 허전한 시간을 보람 있는 일로 채우기 위해 선택한 일에서 난 많은 딸들을 얻었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낯선 곳에 온 딸 또래의 이주 여성들을 난 정말 딸처럼 생각하며 한국어를 가르쳤다. 아주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고향에 계신 엄마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이 많은 나를 통해 엄마의 정을 느끼는 그들에게 난 한국어만 가르친 게 아니었다.

꿈을 안고 낯선 나라에 왔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환경 탓에 좌절하고 힘겨워하는 그들과 함께 울어주고, 별것 아니지만 소소한 행복 앞에서 미소 짓는 그들보다 더 큰 소리로 웃어주며 격려했다.
어디에든 적극적이고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라 그런 여성들 중 한 명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시샘하듯 하나둘씩 나를 엄마처럼 생각하며 따르기 시작했다. “한국어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릴 때는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쉽고 재미있게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만 하면 되었는데 “엄마”란 호칭 앞에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직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그것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외국 땅에서 겪어야 하는 고초들을 같이 아파하고 고민해 주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직접 나서서 해결해 주지는 못 하지만 같이 아파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던 걸까?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중국, 태국, 미얀마,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네팔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딸들을 쑥쑥 많이도 낳았다.

그러다가 3년 전부터 지역대학 한국어학당에도 출강하게 되면서 복에 없던 아들까지 얻게 되었다. 딸만 있던 내게 아들은 또 다른 신비로움으로 다가왔다. 아들 있는 친구들끼리 밥 먹으면서 아들 군대도 안 보냈으니까 낄 자격도 없다고 따돌림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무척 뿌듯해하는 내 모습이 약간은 우습기도 했지만, 어쨌든 난 마흔 후반의 나이부터 다국적의 아들, 딸을 가진 다문화 엄마가 된 것이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며 예쁘게 잘 살아주는 딸들도 있고 한국어학당 과정을 마치고 다른 지역 대학에 가서도 꾸준히 안부를 물어오는 든든한 아들들도 있지만, 자녀를 둘씩이나 버려두고 집을 나가버린 딸, 낳은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도망가 버린 딸, 가정폭력 문제로 나한테 이야기도 못하고 울고 있는 딸들도 많으니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2020년도 벌써 9월을 맞았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내가 하는 수업도 비대면 수업이 되었다. 1학기엔 젊은 딸들도 안 올려 봤다는 한국어 수업 동영상을 유튜브에 거의 200개나 올리며 이제 좀 적응하나 싶었더니 2학기에는 ‘실시간 화상수업’을 하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처럼 컴퓨터나 기기 만지는데 익숙하지 않은 내겐 정말 힘겨운 일이었지만 능력보다는 끈기로 또 수업을 해 나가고 있다.

이번에 만난 학습자들은 한국에 일하러 온 근로자들이 많다. 아직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그것도 직접 만나는 게 아니라 컴퓨터 안에서) 난 또 어느새 그들의 엄마가 되어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니까.

오늘도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시간 있으면 차 한 잔 해요.”
“엄마, 내일 고향에 갈 거예요. 엄마 선물 뭐 사 올까요?”
“엄마, 며칠 후면 전주로 가요. 이제 기숙사에 입소해도 된대요.”
“엄마, 나 어떡해요. 남편과 도저히…….”
“엄마, 우리 아이 어쩌죠? 또래 친구들은 다 말도 잘하는데 우리 애는 언어장애가 있는 것 같아요.”
하루 종일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힘겨울 때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이 즐거움만 있는 것도, 고통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그저 묵묵히 내 가슴만 열어줄 것이다
다문화 엄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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