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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잘 버티고 계시는 부모님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0.06.26 15:13 수정 2020.06.26 15:13

한외복(수필가·구미 거주 출향인)

코로나와 함께 맞이한 여느 해와 다른 봄 부모님께 안부 전화할 때마다 “우리는 괜찮다. 느그들만 잘 있으면 된다”라고 하시던 부모님.
“느그 엄니 약 몇 년은 더 타주고 죽어야할 텐데”
“느그 아부지 밥 몇 년은 더 차려 주고 죽어야할 텐데”
버팀목이 되어 서로의 명을 이어주는 아버지 엄마시다.
고립무원 산촌에서 마스크는 어떻게 구하시는지, 섭생은 어찌 하시는지 걱정 되었다.
마을 회관은 문을 닫아서 이웃사촌들도 못 만나고 얼마나 불안하고 적막하실까.
마음의 탯줄을 완전히 자르지 못한 내 아이들이 우선순위라 막둥이 개학 세간을 부모님보다 먼저 살피고 나니 부모님 안위가 걱정된다.

일찍 찾아뵙지 못한 양심의 북소리가  코로나 확산처럼 점점 크게 울려서 밑반찬 몇 가지 만들고 두 분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 마트에서 장만하여 친정으로 향했다.
지구에 창궐한 코로나의 여파는 친정으로 가는 4차선 포도를 텅 비웠고 농부들이 보이지 않는 연둣빛 도는 들판에는 아지랑이만 아롱거린다.

동네 골목에는 강아지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고 한낮에도 적막강산이다.
돌배나무 우뚝한 친정집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엄마 엄마 엄마를 여러 번 불러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현관문을 열어젖히니 그제야 반가운 인기척을 내며 엄마가 안방에서 나오시는데 엄마를 뒤따라 나오시는 아버지는 엄마한테 마스크부터 쓰라고 소리치신다.

우리 동네는 자식들이 일체 들락거리지 않는데 뭐 하러 오느냐고 걱정을 하신다.
혹시라도 너희들 때문에 이 동네에 몹쓸 병이 돌아 누가 무슨 탈이라도 나면 이 동네에 어떻게 살겠느냐고 역정까지 내신다.
돌림병에 유난히 민감한 아버지는 어릴 적 장티푸스로 집안이 곤혹을 치른 일을 잊지 못하고 계셨다.
장티푸스가 평화로운 친정 동네를 덮쳤을 때 우리 할머니께서 가장 먼저 걸리셨단다.
산촌의 가난한 살림으로 병원에는 아예 갈 염도 못 내고 풀뿌리를 약으로 쓰는 민간요법 말고는 변변한 약도 없을 때 전염병은 저승사자만 기다리는 참혹한 시절이었다. 할머니가 장티푸스에 전염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동네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 가족이 사용 못 하도록 동네 우물부터 막았단다.

코로나가 창궐한 지금에도 공동 우물이 있다면 가장 먼저 사용금지 조치를 했겠지만
아버지 어린 나이에 따돌림당하고 우물이 아닌 도랑물을 길어다 먹는 상처가 가장 크셨다고 한다. 다행히 다른 가족들까지 전염은 되지 않았고 할머니도 완쾌되시어 팔순까지 장수하셨다.
들에 나가 혼자 일하시면서도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친정 부모님. 팔십 평생 처음 겪는 코로나에 잘 대처하고 계시는구나. 안도의 한숨이 났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신 부모님은 6·25 난리, 보릿고개, 물난리, 불난리, 이 난리 저 난리 별의별 난리를 다 겪으며 지금까지 팔십두 해를 사셨다.
코로나19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으면 금쪽같이 여기는 자식이 와도 뒷전이고 딸 얼굴 보기 전에 마스크부터 쓰고 엄마 마스크까지 챙기실까.
딸을 보며 방바닥에 궁둥짝도 못 붙이게 선걸음에 돌아가라고 성화를 부리신다.

창문 활짝 열어서 구석구석 먼지도 좀 털어내고 아픈 곳은 없는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내가 감염원일지 몰라서 쫓겨나듯 친정집을 나왔다.
부모 자식 간의 오붓한 정도 마음 놓고 못 나누게 하는 전염병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면 우리 아버지처럼 강단 있게 혈연적 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에 다 같이 동참해야 하리라.

빈 화분에 나팔꽃 씨앗을 심으며 딸아이가 부르던 동요를 불러본다.
“씨 씨 씨를 뿌리고
꼭꼭 물을 주었죠
하룻밤 이틀밤 쉬쉬쉬
뽀드득뽀드득 싹이 났어요~”

*올봄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소개된 사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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