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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0.02.18 13:59 수정 2020.02.18 13:59

이익주(시인·전 대구시조시인협회장)

봄의 따사로운 기운이 대지를 감싸고 있습니다. 지금쯤 어디선가 멀리 봄의 교향곡이 들려오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어 오는 듯 우리의 마음을 콩닥거리게 만듭니다.

풀꽃 향기 베고 누운 춘삼월 허리쯤에
불붙은 꽃이랑 사이 춘풍에 취한 두견이가
꽃자리 새 판을 짠다
더덩실 허리춤 잡고
-졸시 ‘봄의 서곡’ 전문

‘봄꽃’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벚꽃이라고 합니다.
우리 김천에도 어디라 할 것 없이 벚꽃이 만개할 것입니다. 시내에서 직지사까지 가는 수십 미터에 걸친 지방 국도 양편에, 그리고 직지천변 둘레길의 야경 벚꽃은 봄이 되면 시민들의 호응으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특히 교동 연화지 둘레의 벚꽃 향연은 전국적으로 많은 상춘객들을 불러들여 봄의 아름다움을 남김없이 발산하고 우리의 마음을 더없이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벚꽃을 일본의 국화(國花)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일본에는 우리나라의 무궁화처럼 지정해 놓은 국화가 없습니다. 다만 일본 왕실에서 여러 문양을 쓰는데 그중 하나가 벚꽃일 뿐입니다.
벚꽃은 일본이 원산지인 꽃도 아닙니다. 벚나무는 삼국시대 그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 덕에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전의 할아버지도 봄이면 벚꽃놀이를 가셨고 버찌로 심심한 입을 달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일본의 벚나무는 우리나라의 것이 건너가 뿌리를 내린 것으로, 일본 식물학자들도 일본 벚꽃의 원산지는 한국의 ‘제주도’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괜한 반일감정 때문에 벚꽃축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벚꽃을 사꾸라꽃이라고 무심코 생각 없이 일본말로 부르는 우리의 잘못된 말버릇이라 생각이 됩니다.

속살 돋은 초봄 언덕 절망마저 환해 오는
아련한 발자국 소리 그림자 따라오면
기다림
익어도 좋을
고 만큼 자란 봄비

조용한 환희 속에 어둠이 밀려나고
한 옥타브 건너뛰며 추억 하나 걸어두면
개울물
가락 얹어서
꽃잎처럼 흘려본다
-졸시 ‘봄의 향연’ 전문

봄이 오면 초록색으로 변해 가는 고향 산언덕에 또 하나 조그맣게 꽃을 피우는 것이 할미꽃입니다. 어릴 적 아련하게 할머니와의 추억이 생각나게 하는 꽃이지요.
설화 한 편이 생각나네요.
옛날에 일찍 홀로 된 어느 어머니가 딸 셋을 키워 시집을 보냈으나 모두에게 문전 박대를 당하고 ‘딸자식 다 쓸데없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너무나 섭섭한 나머지 고개 위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딸을 내려다보던 그 자세대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 뒤 어머니가 죽은 곳에는 할미꽃이 피어나게 되었고요. 이 설화는 가난과 가부장제도라는 가족제도 때문에 겪는 가난한 하층 여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고통을 잘 드러내고 있지요.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슬픔을 간직한 꽃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 전 지역의 산과 들에 자생되는 꽃입니다.

어스름 녘 가쁜 꿈을 골 깊이 숨겨두고
허한 가슴 굵은 명줄 매듭 하나 풀고선
때보다 일찍 온 봄을 부여잡고 있었다
- 졸시 ‘고향, 그리움’ -할미꽃 중에서

이제 다시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푸른 몸짓으로 대지는 요동칠 것입니다. 그 봄의 무대 맨 앞에 나타나 보이지 않게 조용히 앞마당 매화가 꽃을 피울 것이고 종달새는 또한 노래할 것입니다.

뜨겁게 달궈졌다 꿈이 닿는 자리마다
봄날 그 매향에 취해 시간은 멈춰 서고
여인의 노랫가락이 하늘하늘 내리던 날

첫사랑 그 발자국 꽃잎처럼 떨리던 날
봄 입덧 헛구역질 삭여낸 가지 끝에
이른 봄 달빛에 안겨 차곡차곡 쌓인 향기
-졸시 ‘축복, 그 매향’ 전문

‘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진달래꽃입니다.
대지가 녹색으로 변하면서 봄비까지 촉촉이 내리는 날이면 진달래 꽃잎은 산처녀 앵두 빛 입술처럼 맑고 곱습니다.
어릴 적 공부 마치고 동네 동무들과 줄을 지어 먹이를 주기 위해 뒷산에 소를 몰고 올라가는 날은 더욱 그 빛이 아름답고 영롱하게 빛납니다. 온산의 푸른빛과 어우러져 붉고 은은하게 드러나는 산언덕에 살포시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동무들과 신나게 따먹기도 했습니다.
‘먹는 꽃’이라는 의미에서 ‘참꽃’으로 불리기도 하고 두견새가 울면서 토한 피가 떨어져 붉게 물든 꽃이라 해서 ‘두견화’라고도 전합니다.
두견새는 봄이 되면 밤낮으로 울고 핏빛같이 붉은 진달래만 보면 더욱 슬피 우는데 두견새가 한 번 울면 진달래꽃 한 송이가 떨어진다는 애잔한 얘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름이 여럿이고 전설도 많은 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입춘이 지나고 삼라만상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우수, 경칩이 다가옵니다.
올핸 겨울이 온 듯 하다가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욱 누그러지고 우수, 경칩이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봄기운을 안고 돌아 따스한 봄비도 내리고 온 데 초목이 노란 싹을 틔울 것입니다.
봄은 솟아오르는 희망의 상징이요 꿈의 푸른 무대입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새 희망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2020년을 힘차게 살아갑시다.

지금 창밖에는 춘삼월이 오기도 전에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넉넉한 가슴마다 속속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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