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출신 영산(影山) 이민영(92세) 시인의 등단 60주년 기념 시선집 ‘강 따라 세월 따라’(은광출판사)가 발간됐다. 1929년 구성면 상좌원에서 출생해 1959년 ‘사상계’에 ‘알’을 발표(유치환 추천)하며 등단해 오늘에 이른 이민영 시인의 시선집 ‘강 따라 세월 따라’는 ‘나무가 주는 편지’, ‘꽃의 울음’, ‘엄마의 젖’, ‘고향 나그네’, ‘고향 갈 때는’ 등 100편의 시가 5부로 나눠 편집됐다.
어쩌다/ 고향 가면/ 나그네 되어// 옛길 헛헛이/ 혼자 거닐다가/ 삼거리에 떨어놓는/ 늙은 그림자// 내려앉은 가슴 자락/ 밟고 돌아서면/ 아! 돌고개 기운 하늘// 낮달로 떠올라/ 옛꿈도 사위는데// 떠나가자// 떠나가자// 멀어지면/ 또 그리울/ 나의 고향
-‘고향 나그네’ 전문
아침솥의 밥/ 딸딸 끍어 퍼도/ 한 그릇이 모자라// 바가지에 한테 담아/ 마주 앉은 밥상// 누야 한번 나 한번/ 서로 얼굴 쳐다보다가// 누야는 숟갈 놓고 부엌으로 가/ 빈 솥에 물 붓고 우둑우둑/ 주걱질하며 질금질금 울었지//“누야아, 들어와 밥 안 먹나아”// 둘이 먹다 또 남는 밥 한 덩어리
-‘밥 한 덩어리’ 전문
고향 갈 때는/ 풍선 타리라// 두둥실 바람에 실려/ 몸짓으로 가리// 흘러간 세월/ 모두다 일깨워놓고/ 어린 시절 그 친구들/ 한자리에 모아놓고// 나는 춤추리/ 덩실덩실 저물도록 춤추리// 소백산맥 청바람에/ 별떨기 쏟아지는 밤/ 뒷산 뻐꾸기 울음 울 때면// 우리 어매 물레 잦던/ 뒷방 찾아/ 나는 잠 들리 어매 무릎/ 오강목 치마폭에/ 애기되어 잠 들리
-‘고향 갈 때는’ 전문
이민영 시인은 머리글을 통해 “60년 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대구 원화여고 교사시절에 발간한 첫 시집 ‘잃어버린 체온’ 출판기념회였다”고 회고했다.
머리글에 의하면 당시 교장선생이자 시인인 창주 이응창 선생이 대구 시내 모 다방에서 각별히 준비해준 특별한 행사였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 비까지 지척지척 내리는 날씨 탓에 썰렁한 행사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었으나 뜻밖의 귀인이 비에 흠뻑 젖은 채 나타났다. 한솔 이효상 선생(당시 경북대 물리대 학장)이었다. 학연, 지연은 물론 아무런 연결이 없는 한솔 선생의 출현으로 분위기는 활기를 띄고 주위의 권유로 한솔 선생의 격려사가 이어졌다고 밝혔다.
시집 머리 글에는 격려사 요약도 소개해놓았다.
“이 책을 받은 것이 어제입니다./ 이 책도 그렇고 그런 것이러니/ 한 장 넘겼습니다./ 밤이 점점 깊어갑니다./ 아침이 왔습니다./ 오늘은 비가 몹시 옵니다./ 나는 오는 비를 다 맞았습니다./ 나는 여기 와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 아주 기쁩니다.”
현재 춘천에 거주하고 있는 이민영 시인은 그동안 ‘잃어버리 체온’, ‘바람으로 왔다가’, ‘해와 달 사이’ 등 3권의 시집과 육필시집 ‘연어는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달’, 산문집 ‘나는 거기로 떠나고 싶다’를 발간했으며 건강 관련 저서 ‘무술이 지닌 건강비결’, ‘동양 비전의 자력건강 장수법’, ‘뜸의 세계’ 등이 있다.
이민영 시선집 ‘강 따라 세월 따라’는 165쪽 분량의 200부 한정판이며 비매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