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국제화시대가 도래한지 삼십 수년이 흘렀다. 세계가 하나로 좁아지고 있는 지구촌 시대, 변화의 물결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어제가 옛날’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다. 바다로, 하늘로 통하는 길목마다 발 들여놓을 틈조차 찾기 힘들 정도의 온통 인산인해로 북적거리고 있다. 2020년 새해를 맞아 김천에서도 인천 공항으로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에 여러 명이 큼직한 여행용 가방을 들고 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실감했다.
2001년도에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이 어느새 내년이면 이십년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 5위의 국제공항으로 하루 십오만 명 내외의 이용객이 붐빌 정도로 그야말로 이제는 ‘국제화, 세계화’란 말이 낯설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느낌이다. 외국 땅 한번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우리들, 사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비행기 타고 외국 나가는 일은 정치인, 외교관, 사업가, 예술인 등 극히 일부의 선택받은 특권층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던 것이 어느새 우리의 국력이 신장되고 잘 사는 민족 대열에서도 선두주자가 되어 이제는 웬만한 사람이면 동남아 여행 정도는 우습게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외국여행을 하지 못한 이들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언론 매체로 접해왔기에 외국에 대한 기본 상식쯤은 널리 익혀 알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외형상으로는 잘 사는 민족이 된 것은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우리나라 안을 둘러봐도 전국 어딜 가나 쭉 뻗은 도로와 잘 꾸며진 관광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외국인 내국인이 한 데 어울려 관광을 즐기고 있는 모습으로 지구촌을 이루고 있으니 국민소득 또한 쑥 올라 있고 국민 두세 명에 차 한 대 꼴로 차의 홍수를 이루고 있다. 건물도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으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 보겠다.
일 년에 오백만 명이 너도나도 다투어 돈 지갑을 챙겨 인천공항을 드나들었다고 하니 국민 십 명 중의 한 명꼴로 해외여행을 하고 온 셈이다.
어느 한 때 ‘한국방문의 해’를 정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외국인 유치작전에 심혈을 기울인 일도 있었고 국민 또한 그 홍보에 최선을 다하여 관광 역류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너도 나도 앞 다투어 해외로 발길을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하기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원했던 외국 땅을 밟아보고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의 모습과 문화, 학문, 예술 등을 직접 살펴봄으로써 견문을 넓히고 돌아와서는 얻어진 지식을 바탕으로 삶을 재충전의 기회로 삼는다면 우리 국민 모두가 외국여행을 다 다녀온다고 해도 어느 누가 이를 문제 삼겠는가. 일부 수준 이하 몰지각한 여행객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행동들로 인하여 한국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일도 있었다.
금지구역 내에서의 사진촬영, 호텔 객실에서의 라면 끓여먹기, 고성방가에. 고스톱에, 잠옷바람으로 호텔 안을 활보하는 일, 금연 장소에서 담배 피는 일, 기내에서 신발을 벗어 냄새를 풍기는 일, 그런가 하면 연수를 빙자한 무더기 쇼핑관광, 몬도가네식 보신관광 등은 매스컴을 통해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길바닥에 함부로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버리는 일, 동남아 등지에서 안내원이나 종업원을 하인 취급하는 일 등이 있는가 하면 골프장에서 자기가 친 공을 못 찾아온다고 골프채로 캐디를 때리고 물에 밀어 넣은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 추태이긴 하겠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한국인 전체의 국민성으로 인식 될 수도 있다.
몇 차례 중국과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갈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낀 일이 있다. 중국인들은 비록 잘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마는 중화민국 국민으로서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조상들을 가진 것에 대하여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잘 사는 타국인들을 부러워하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이 십사억의 거대한 민족으로서 개방화의 물결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었다.
연수 일정에 따라 마침 입학식을 하고 있는 어느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학부형들이 모두 교문 밖에서 자기 자녀가 입학식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원칙을 어겨가며 교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입학생 수보다 학부모 수가 훨씬 많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입학식과 너무 대조적인 데 놀랐다.
인도(人道)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도로에서 사람, 자전거, 차가 함께 가는데도 큰 것이 작은 것을 피해 가는, 즉 ‘작은 것 우선’이라는 그들 특유의 대국적(大國的)인 국민성에 의해 무질서 속의 질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 나라 일본, 그러나 봐야만 하는 가깝고도 먼 그 나라 일본, 그들은 또 어떠했는가? 자동차로 홍수를 이루고 있는 도심지에 교통 경찰관이 한 명도 눈에 띄지 않는데도 교통질서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고 있다.
근면 검소 친절이 몸에 배어 있는가 하면 작은 기구, 기계 하나에도 철저하게 절약 차원에서 만들어져 있음을 보았다. 얄미울 정도로 알뜰하고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일본, 이들의 철두철미한 원칙주의는 비록 미운 민족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교훈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단 며칠간의 여행으로 ‘중국은 이렇고 일본이 어떻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고 하겠으나 일본은 저만치 앞서 달아나고 있는 것 같았고 중국은 무한한 잠재력으로 무섭게 우리를 쫓아오고 있음을 분명 느꼈다.
동북아시아 한쪽 귀퉁이 작은 해 뜨는 나라, 예의 바르고 흰옷을 즐겨 입었던 우리 민족,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는 동안 수십 번의 침략을 받아 보기는 했어도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는 않았던 문화민족이 아니었던가? 자랑스러웠던 찬란한 문화를 이미 이웃나라에까지 나누어주었던 배달의 한민족 아닌가?
이제 국제화, 세계화 지구촌으로 온 세계가 한 울타리 안에서 이웃이 되어 공존공생해야 하는 이즈음 새해를 맞아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훌륭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새로운 각오로써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자질 함양에 선도적 역할을 다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