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제1241호 직지사 예념미타도량참법권 권6~10
1474년(성종 5년) 세조비 정희대왕대비가 성종비 공혜왕후 한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새긴 목판을 16세기 초에 해인사에서 인출한 책으로 1996년 4월 4일 보물 제1241호로 지정됐다.
이 불경의 원간본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며 여러 악업을 참회하고 보리심을 내어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법회 절차를 적은 것이다.
판본은 전10권 중 6~10권의 5권 1책인데 간행시기가 없어 정확한 간행 동기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각수(刻手)의 이름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성종비 공혜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10권 끝에는 학조대사의 발문이 있는데 해인사 소장각 판목에서 인출한 초쇄본으로 보고 있다.
보물 제1303호 직지사 백지금니금강 및 보문발원
1371년(고려 공민왕 20년) 묘지(妙智)와 묘수(妙殊) 두 비구니의 시주로 제작된 사경(寫經)이다. 절첩본으로 표지는 감지에 금은니로 그린 보상화문으로 장식했다. 책머리에는 백지에 금니로 그린 여래삼존도와 수얼관음도 등 2폭의 변상도가 있다. 2000년 12월 22일 보물 제1303호로 지정됐다.
내용은 금강경,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 발원문 순으로 백지에 금니(金泥)로 필사한 것이다. 금강경은 기원정사에서 석각가 수보리(須菩提)의 질문에 따라 반야사상을 설명한 경전이다.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은 관세음보살을 통해 재앙으로부터 구제받는 내용과 관세음보살의 32가지 응신(應身)이 서술된 관음 신앙의 대표적인 내용이다. 발원문은 당나라 현각선사의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에 수록된 내용을 적었다.
보물 제1306호 직지사 묘법연화경
조선 태종 5년(1405년)에 안심사에서 간행한 판본 묘법연화경(일명 법화경)은 우리나라 불전관계사상 가장 많이 개판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경전이다. 2001년 1월2일 보물 제1306호로 지정됐다.
법화경 28품은 일시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 수세기에 걸쳐 완성됐다. 이 법화경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5세기 신라 법흥왕 때이며 기록상 최고의 간행본은 고려 현종(1020~1022년)때 현화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현재 법화경은 여러 건이 국가지정문화재로 돼있다. 그 가운데 보물 제961호와 제971호가 이 법화경과 동일판이다.
보물 제1576호 직지사 대웅전
직지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원래 대웅대광명전이란 2층 건물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려 1602년(선조35년)에 중건됐다가 1735년(영조 11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중창했다. 2008년 9월 3일 보물 제1576호로 지정됐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이며 지붕 형식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직지사의 중심 법당답게 크고 짜임새가 있으며 높은 천장에 화려하면서 절제된 장식은 종교적인 장엄함을 더한다.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은 1651년(효종 2년)에 조성된 것으로 용, 물고기, 개구리, 연꽃 등 여러 무늬들을 소박하게 조각했다. 폭이 9m에 이르는 후불벽 뒤에는 활달한 필치로 그린 관음도가 있으며 다른 벽면도 화려한 벽화들로 장식했다.
보물 제1717호 삼강행실효자도
‘삼강행실도(三鋼行實圖)’는 세종대왕의 지시로 편찬된 책으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실천을 중요한 윤리도덕으로 삼는 조선에서 국민윤리교과서적 성격을 갖는 교본이다. 뒤이어 편찬한 행실도류 도서의 전범이 되는 책이다.
이 ‘삼강행실도’는 광곽의 변란이나 계선 및 자획, 화면의 상태로 보아 1434년(세종 16년)에 판각된 판목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인출한 책으로 사료된다. 비록 4건의 탈락이 있기는 하나 전존본이 희귀하고 보존상태도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갖는다. 특히 조선전기의 서지학 연구 및 한문 표점의 연구, 회화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011년 6월 21일 보물 제1717호로 지정됐다.
보물 제1859호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은 1651년 묵서기(墨書記)를 가진 17세기 중반의 작품으로 대웅전의 중건과 함께 장엄화됐다. 중대에 장엄과 문양이 한껏 다양하게 베풀어진 소중한 수미단이며 구조적으로 내부 격간을 분절하는 방식은 조선시대 후기 수미단에서 볼 수 없는 소재의 구성과 배치를 가능하게 했다.
하대는 족대나 내부 문양 없이 높은 단을 두어 수미단을 받치고 있으며 수미단의 몸체인 중대는 중대목을 중심으로 3단으로 층을 내고 바탕면은 좌우에 통자형 어미기둥과 중앙에 대나무 마디 모양의 기둥을 세워 가로로 7칸을 나눴다. 중대는 앞면 7칸, 옆면 1칸의 대형 격간과 1·2·3층의 3단 구조 속에 파노라마식 구성법이 사용됐다.
조선시대 후기에 만든 수미단은 대부분 격간이 3단일 경우 1층과 3층은 동일한 모양의 틀을 유지하고 중앙의 2층만 엇갈린 모습이나 직지사 수미단은 1~3층 모두 엇갈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청판마다 소재를 달리하며 표현되는 일반적인 수미단과는 다른 구조와 장엄한 양상을 보여준다. 2015년 3월 4일 보물 제1859호로 지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