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
고요한 함성
바람도 숨 고르며 앉아 쉬는 파장 무렵
청각 장애 부부가 하루를 결산한다
손목에 감긴 말들이 좌판 위에 떨어지고
하루 종일 졸고 있던 파 한 단에 이천 원
쪽파의 매운 인생 손톱 밑은 아려와도
숨었던 말문이 활짝, 꽃으로 피어난다
입으로 다진 기약 소리로나 묶던 다짐
저 고요한 소란에 싹둑 싹둑 잘려 나간다
반듯한 말들은 어디, 숨을 데를 찾고 있고
달콤한 고백인가 아내 얼굴이 환해진다
젖은 어깨 부딪치며 손으로 가는 먼 길
초승달 온몸을 기울여 남은 달빛 쏟고 있다
<심사평>
윤애라의 ‘고요한 함성’은 노점상을 하는 청각 장애 부부가 몸으로 말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능숙한 비유를 통해 형상화했다. 이를테면, “숨었던 말문이 활짝, 꽃으로 피”는 생명력이나 “초승달 온몸을 기울여 남은 달빛 쏟고 있다”와 같은 우주적 감성은 대상 세계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작가의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다른 작품에서도 당선작에 버금가는 기량을 확인 할 수 있어, 이견 없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염창권 박권숙 시조시인
<당선소감>
독자 심장 달구는 말들 찾으려 노력
막연하게 행운을 기다리며 이 겨울의 벼랑 끝에 서 있던 나는 뜻밖에 신춘문예 당선의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허공이 내 발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비로소 발걸음을 한발 앞으로 내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조는 줄곧 괄호를 만들어놓고 내게 질문을 했습니다. 정형의 틀은 마치 수학 공식을 외우는 것처럼 힘들고 재미있었지만, 시조의 옥죄는 여유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적합한 표현이 아니라고 뱉어낸 말들을 주워 담던 수많은 밤, 어지러운 말들의 진창에 곤두박였다가도 다시 일어서던 새벽빛, 여전히 괄호는 두 개의 밝은 초승달처럼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봅니다.
독자의 심장을 달구는 말들을 찾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헤매야겠지요. 임중도원(任重道遠),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멉니다. 그러나 이제 떳떳하게 새 자루를 준비하겠습니다. 고향의 파도가 끊임없이 나를 불러도 달려가지 못했는데 국제신문사의 부름을 받게 되어 너무나 기쁩니다.
아직도 캄캄하고 먼 길이지만 또렷한 등불을 밝혀주신 심사위원님, 살아 숨 쉬는 말을 가르쳐 주신 권숙월 선생님 노중석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난 십 년 동안 봄과 가을을 함께했던 백수 시조아카데미 회원님들, 글의 지평을 넓혀 주신 김천문인협회 선생님들,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우표를 붙여 보내도 소식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서 기쁨으로 울먹이실 나의 부모님 그립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감사의 주인이 되시는 나의 하나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약력>
1963년 부산 출생. 2004년 자유문학 시 부문 신인상. 2015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8년 백수문학신인상. 백수 시조아카데미 회원. 김천 문인협회 회원. 현재 논술 교사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