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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자업자득 인생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19.12.12 16:15 수정 2019.12.12 16:15

류성무(수필가·전 김천시농업기술센터 소장)

자업자득이란 대개는 자기가 저지른 행위에 상응하는 과보(果報) 또는 자기가 받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을 자주 들어왔다. 여기서 말하는 자업자득이란 의식 무의식의 체험적 자기 관념을 뜻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삶,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즉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신앙의 선택을 포함한 인간사 대소사 일체의 선택 모두가 의식 무의식의 자기 관념의 작용이며 이러한 대소사가 선택들에 의해 자기운명이 결정되어짐으로 이를 또한 자업자득이라고도 한다.

불교교리 강설에 자업자득이란 인과응보와 인과업보가 따라 다니는데 원인과 결과는 반드시 그의 합당한 이유가 있음을 뜻하는 불교용어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선악의 인업에 응하여 과보(果報)가 있고 또한 행하는 대로 업에 대한 대가를 받는 일로 인연(因緣)에 좋은 과보가 있고 악한 인연에는 악한 과보가 옴으로 곧 인(因)과 과(果)는 서로 응한다고 볼 수 있다.

군자는 제기(諸己)요 소인은 제인(諸人)이라는 말과 같이 잘못되면 팔자 탓, 못살면 조상 탓, 패가하면 무덤 탓. 그래서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한다. 팔자 탓도 자업자득과 인과응보에서 온다고 한다.
Give and take라는 말을 무심코 쓰는데 의미 깊은 말로 우리 인생은 먼저 주는 것만큼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대접하라. 따라서 자신도 대접을 받게 된다. 먼저 베풀지 않고 대접을 바라는 것은 망상이다.

먼저, 먼저, 소통하고 대화하고 베풀어라. 그 대가는 배로 곧 돌아오게 된다.
불교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는 ‘사섭법(四攝法)’이 있는데 첫째는 보시(報施)로 원하는 것을 보시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친애하는 마음이다. 둘째는 애어(愛語)로 보살이 중생에게 부드럽고 온화한 말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고맙게 여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셋째 이행(利行)은 선행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여 불도에 이끌어 들이는 방법이며 넷째는 동사(同事)인데 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근기(根機)에 따라 몸을 나타내어 서로가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다.

자업자득에는 먼저 베풀어야 하는데 ‘사섭법’ 중에 보시법의 이행으로 재화나 물질로 보시하는 재시(財施)도 있지만 격려와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 법시(法施)도 있다. 먼저 주고 베푸는 행위는 재화나 물질 뿐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행동과 마음으로 상대에 주는 애어, 이행, 동사(同事) 등이 있다.
표정으로 보이는 것은 미소이다. 한 번의 미소는 용서하고, 또 한 번의 미소는 감사하고, 또 한 번의 미소는 사랑하고, 또 한 번의 미소는 행복하다.

상대에게 호감을 살려면 미·인·대·칭 해야 하고 당신이 먼저 해야 한다. ‘미’는 미소 짓고, ‘인’은 인하하고, ‘대’는 대화하고, ‘칭’은 칭찬하고, ‘당’은 당당하게, ‘신’은 신나게 살자는 것이다.
불경(佛經)에서 나온 경문으로 선행을 장려하고 악행을 징계하는 무재칠시(無財七施)는 첫째가 화안시(和顔施)인데 이는 얼굴에 화색을 띄우고 미소를 짓는다. 둘째 언시(言施)는 사랑의 말, 칭찬의 말로 격려, 양보와 부드러운 말을 하자. 셋째는 심시(心施)인데 이는 마음의 문을 열고 따뜻한 마음을 주자. 넷째는 안시(眼施)인데 이는 사랑을 담은 눈으로 보자. 다섯째는 신시(身施)인데 이는 몸으로 베푸는데 짐을 들어다 주는 것 등이다. 여섯째는 차시(坐施)인데 이는 버스나, 기차, 전철 등의 탑승 시에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다. 일곱째는 찰시(察施)인데 이는 굳이 묻지 않아도 상대방이 속을 알아서 도와주는 것이다.

걱정을 같이하고 베풀어서 큰이익을 보게 된 실화가 있다. 1893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호텔 도우미로 근무한 어느 소년의 이야기다.
비가 오고 바람 부는 늦은 밤에 노부부가 와서 숙박을 청했는데 그 호텔 지배인이 방이 없다고 거절하였다. 간절하고 절박한 노부부의 사정을 본 도우미 소년은 노부부에게 “밤도 깊어가고 가실 때가 없으니 불편하시더라도 제 방에서 같이 쉬고 가시라”고 편의를 베풀어 잘 자고 떠났다.
그 후 2년 뒤에 “당신 방에 잘 자고 간 노인”이라면서 “캘리포니아 시카고에 있는 허브공항에서 급히 만나자”고 연락이 와서 갔더니 “당신을 뉴욕 맨하튼 5번가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지배인으로 채용하였으니 같이 일하자”고 한 소설 같은 이야기는 베풀어 자업자득한 실화다.

인생에 핑계와 탓은 책임으로부터 자기소외(自己疏外)이다. 삶의 모든 결과는 누구도 아닌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도 자신을 자유스럽게 하는 것도 모두 자기 자신이다. 설령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출생계급이나 삶의 조건은 사실 모두 자신의 업(業)에 의한 과보(果報)이다. 인과응보, 인과업보로 인한 자업자득(自業自得)은 모두 자기 탓과 자기 선택이 필연적 귀결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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