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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거울을 보며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19.11.30 18:04 수정 2019.11.30 18:05

이기협(감천초등학교 교장)

아내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화장을 한다. 크림으로 맨질맨질하게 다듬어 놓은 얼굴에 눈썹도 그리고 귀걸이도 하고 옅은 붉은색 립스틱으로 마무리하고 입술을 맞물려 비벼대면 화장은 끝난다. 거울에서 얼굴을 돌리는 순간 아내는 딴 사람이 되어 배시시 웃는다. 잘 가꾸어진 아내는 만족한 얼굴로 거울에서 튀어나와 매력을 발산하며 출근한다.

엘리베이터에 걸려있는 거울이 나를 본다. 화장기 없이 원판 그대로인 나를 보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비춰주기도 하고 비뚤어진 넥타이를 가리키며 바로 잡으라고 알려 주기도 한다. 거울이 시키는 대로 흐트러진 나를 바로 잡고 나면 엘리베이터는 나를 토해 내며 오늘 하루도 잘 살고 오라고 문을 열어준다.

교장이 되고부터 거울이 사라졌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부끄럽지 않은 내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었는데……. 가을운동회가 열릴 때면 운동장을 가득 메운 마을 사람들과 학부모님들의 반가운 손끝에서 나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교장이 되고 나서 부터는 예의를 갖추어 단정하게 인사하는 아이들과 곱게 화장한 학부모님들의 정중한 언어 속에서 나의 얼굴이 비추어지지 않았다.

교장이라는 타이틀이 가져온 중압감은 아내가 아침이면 거울을 보며 화장하듯 말씨도 점잖게, 행동도 올바르게, 흐트러짐 없이 화장하고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의 부족함을 알려주던 거울은 사라지고 아침마다 변장술을 부리던 아내의 거울이 나의 거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우와 민재 오늘 머리 깎았구나, 멋지다. 오늘 밥맛은 어때? 매워? 그래도 조금만 더 먹자”
점심시간은 나의 거울을 찾아 나서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점심시간, 가장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에 나의 거울을 본다. 점심시간에 만나는 아이들의 얼굴엔 담임선생님의 얼굴도 보이고 부모님들의 얼굴도 보이고 학교생활도 보인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아이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의 교우 관계는 어떤지, 앞으로 뒷바라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들의 쾌활한 웃음과 해맑은 미소와 수줍은 듯 웃으면서도 인정 어린 눈빛에서 나는 새 힘을 얻는다. 아이들의 교실을 일일이 돌아보지 않아도, 아이들이 사는 집에 가보지 않아도 아이들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도 잘 보여준다.

오늘도 나는 거울을 닦고 있다. 아내의 거울처럼 치장하거나 꾸며주는 거울도 필요하지만 안 보이는 곳을 보여주어 알려 주고,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잘 정돈 시켜주는 거울 그 거울을 사랑한다. 나에게 힘을 불끈불끈 솟게 하는 마력을 지닌 사랑스런 제자들을 위해 나를 닦는다. 나의 거울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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