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칼럼

교육칼럼-그 집의 시간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6.02.02 21:46 수정 2026.02.04 21:00

박경미(수필가․김천고 국제반 교사)

“선생님, 붙었대요.”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조심스러웠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음성치고는 너무 담담해서,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제자가 이 말을 꺼내기까지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되뇌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합격한 아이의 얼굴보다 먼저 그 엄마(제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낳은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갈 나이만큼 살았으니 그 세월이 어땠을까? 제자와 선생치고는 너무 가까이 지냈지만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좋은 대학교의 사대 영어교육학과에 최종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으니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합격했을 보다 더 감격스러웠다고 하면 너무 과장된 말일까

한국으로 온 그날부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아야 했고, 연년생으로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며 포도 농사일까지 하면서 살았으니 당장 급한 한국어 공부조차 마음 놓고 할 수 없어서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수업에도 자주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를 빨리 배워야 할 텐데’하는 생각은 늘 내 머리에 있었지만 남편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제자의 생각을 내가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쯤, 김천가족센터에서 다문화 이주 여성들을 위한 검정고시반을 개설해 주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한국의 교육과정은 어떤지를 엄마들이 알아야 한다는 취지도 있었지만 내 생각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고향에서 여러 가지 여건들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한을 풀고,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통과한 후 대학교도 가고, 자신의 꿈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검정고시반 등록자가 많아질 때쯤 제자가 나타났다. 공부해야겠다고. 그때부터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시작으로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까지 1년에 걸쳐 두 단계 시험을 치고 공부한 모든 학습자가 합격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로부터 또 한 달쯤 쉰 후에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반이 개설되자 제자의 얼굴에 그늘이 보였다.
 “선생님이 잘 지도해 주셔서 여기까지는 왔는데 이제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아요. 내겐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너무 힘든 일이에요. 그래도 지금까지 공부할 수 있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알게 되고, 아이들과 학교나 공부에 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심정을 난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검정고시라고 해도 한국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을 외국인이 이해하고 배운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안 돼요. 아이들에게도 좋은 엄마의 모습은 아닐 거예요. 결과에 상관없이 끝까지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검정고시 시험에 합격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에요.” 나의 이 말은 제자의 마음을 바꾸어 주었고 그때부터 또 일 년 정도 공부한 뒤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되고, 온라인으로 하는 공부였지만 대학까지 마쳤다. 그 덕분에 지금은 다양한 사회활동도 하고 있다.

 사실 2년 전 이맘때도 좋은 일이 있었다. 제자의 둘째 아이가 중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 지역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것이다. 작은 아이의 성과 이후에 큰아이의 대학 합격 소식까지 들었을 때, 나는 결과보다 그 집의 시간들이 먼저 떠올랐다. 누군가 대신 설명해 주지 않는 공지문들, 어디에 물어야 할지조차 알기 어려운 입시 과정, 번역기를 켜고 한 문장씩 해석하던 밤들, 그 시간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중등 시기를 지나며 겪는 어려움은 이미 여러 통계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그 숫자들 뒤에는 종종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학생이 있다. 바로 그 아이들의 엄마다. 언어를 배우고, 제도를 배우고, 시험을 배우며 따라가는 엄마다. 그래서 난 이 집의 이야기를 ‘성공 사례’라고 부르기가 조금 조심스럽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결과만 남기고 그 앞의 긴 시간을 너무 쉽게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의 특별한 재능 때문만은 아니다. 엄마가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아이들 앞에서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만약 제자가 계속 공부할 수 없었다면, 아이들의 길은 같았을까? 우리는 이 과정을 개인의 의지로만 설명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운 좋게 잘된 한 가정의 이야기로만 남겨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식을 전해 들은 며칠 후에 축하도 해 줄 겸 제자와 만났다. 만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우리는 처음으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봤다. 요즘 극장가에 선풍을 일으킨다는 ‘만약에 우리’라는 멜로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보여 주는 연인관계는 아니지만 만약에 우리가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마음들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같이 하는 문화생활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맛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나중에 누군가에게 뭐든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많이 못 알아들어서 힘들었거든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이해했던 사람이,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질문 앞에 서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쉽게 축하만 하고 지나치지 못한다. 이 이야기가 한 가정의 특별한 성공담으로만 남지 않고,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다음 엄마와 다음 아이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로 오래 남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새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