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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교육 현장- 세 번째 맞는 스무 살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8.29 19:59 수정 2024.08.29 20:21

박경미(수필가․김천고 국제반 교사)

2024년 3월 1일, 김천고등학교 입학식을 시작으로 나의 또 새로운 일상이 시작됐다.
우리 지역 명문 자사고인 김천고등학교에 국제반이 생겨서 베트남, 캄보디아 유학생이 들어왔다. 내가 하는 일은 외국인 유학생들을 가르치는 국제반 한국어 선생님!
학기 초엔 나름 명문고로 이름난 김천 자사고에서 유학생을 받는 일에 관심들이 많아서 각 언론사에서 수시로 수업 시간에 찾아와 수업 참관을 하고 수업 장면을 촬영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다문화센터까지 안 간 곳이 없었고, 내 수업을 받는 대상들의 층도 너무 다양했다. 소심한 성격에 낯가림도 심하고 자신감도 부족한 내가 매번 이렇게 다른 환경에서 다른 층의 사람들을 만났으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스트레스가 없다고 말할 순 없으리라.
학생들을 만났던 첫 수업 시간! 고등학생이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린아이 같던 학생들을 보며
'한국어를 처음 접하는 열여섯 살밖에 안 되는 이 아이들과의 수업을 어떻게 하면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학생들 한 명 한 명 나름대로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어 어린 나이에 이 먼 곳에 왔을 텐데……. 한국에 와서 처음 만나,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할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주어야 하는 걸까?‘
일 안 하는 시간에도 늘 내 머릿속은 우리 반 학생들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한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학생들과 베트남어를 어린아이 수준으로만 겨우 알고 있는 선생님의 수업을 상상해보시라! 웃픈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한다고 해도 새로운 어휘는 늘 불쑥불쑥 나와서 ’파파고‘라는 번역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파파고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다. 동사(動詞)를 설명하기 위해 파파고를 찾아서 베트남어로 보여 주었더니 한 학생이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니라고 팔로 X를 표시했다. 그러면서 몸을 떨면서 한쪽 팔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한다. 내가 보여 주었던 동사는 ‘얼어 죽는다’는 동사(涷死)였던 거다.

이런 막막함을 안고 학생들을 만난 지 어느새 6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학생들은 한국어 능력 시험(토픽)에서 나름대로 좋은 성과도 거두었고 이젠 제법 농담을 알아듣기도 하고 농담을 해서 나를 웃겨 주기도 한다.
언젠가 수업 중에 그 시간에 배운 문법을 이용해서 ‘20년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렵지만 학생들의 발표가 끝나자 그들 중에 한국어를 제일 잘하는 학생이 “선생님은 20년 뒤에 뭘 하고 있을까요?”라는 역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고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한 학생이
“선생님 죽어요? 살아요?”라는 말을 했다. ‘선생님이 20년 뒤에도 살아있을까요?’라는 말을 하려고 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20년 뒤면 여든 살이 넘는 거다. 학생들이 내 나이를 알고 있고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단명(短命)하는 문화권의 학생들인지라 본인의 할머니보다 더 나이가 많은 나를 보며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어 버린 거다. ‘좀 더 젊어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선생님이 되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학생들이 원하는 재미있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지만 크게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내 방식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늘 학생들을 생각하고, 사랑하고 그 학생들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일로……. 언젠가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학생들이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릴 때 나를 떠올리는 학생이 한 명쯤이라도 있으면 이 시간들이 보람으로 남지 않을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생각하면 다급해진다. 한국어를 잘 가르쳐 줄 실력 있는 선생님은 나 말고도 많겠지만 학생들을 내 아이들처럼 생각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줄 수 있는 건 내가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으니까. 주어진 시간 동안 학생들에겐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든든한 받침목이 되는 선생님으로, 학교엔 국제반을 만든 취지에 맞는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잘해나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얼마 전 내 육순 기념으로 딸이 주문한 케이크에 “엄마의 세 번째 스무 살”이란 토퍼가 꽂혀 있었다. 다시 설렌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스무 살로 되돌아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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