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곡동에 사는 시누이는 화장을 곱게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처음으로 황금시장에 대파를 가지고 나왔는데 아는 손님이 나타나면 장사는 안 하고 숨바꼭질을 한다. 그래서 만수 할머니가 대신 팔아주기로 했다.
만수 할머니가 옆에서 보니 해자 할머니는 잘 익은 호박 네 개를 오천 원 받으려고 한다. 큰 호박 하나는 이천 원에 팔면 될 것 같은데 팔지 않는다. 따로 팔면 작은 호박을 못 판다고 한다. 손님들이 큰 호박에만 관심을 보이자 만수 할머니가 해자 할머니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삼천 원 달라고 해봐.”
작은 소리로 일러준다.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해자 할머니가
“삼천 원입니다.” 하니 손님이
“한 개가 삼천 원이면 너무 비싸다.”
지갑에서 돈 오천 원을 꺼내주고 호박을 다 사서 가지고 갔다.
병든 모과도 잘 팔린다.
한때 모과도 인기가 좋았지만 요즘은 땅에 굴러다녀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데, 이 모과는 색깔이 곱고 고목에 약도 안 친 무공해라 하니 손님들은
“벌레가 나올 것 같다, 칼로 썰기가 힘이 들겠다.”
투덜거리면서도 생강 넣고 꿀에 제어 두었다가 감기에 차로 마시면 좋다고 덤까지 챙긴다.
영자 할머니는 오란터밭에 가서 덩굴 콩을 뽑아서 포대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콩 껍질을 까면서 콩을 파는데 덩굴 콩이 귀하니 잘 팔린다.
잡은 메뚜기는 없어서 못 판다.
펼쳐둔 농산물이 하나, 둘, 장바구니에 담긴다.
철수 할머니는 땅콩 두 되를 못 팔았는데 만 팔천 원 주려고 할 때 팔 걸, 이만 원 받으려고 안 판 것이 후회가 된다.
오늘 장에 못 팔면 다음 장에 팔아야 되겠다고 한다.
모과가 남아 있는 해자 할머니는 남산병원에 가야되고, 땅콩이 남아 있는 철수 할머니는 김천농협에 가야되니 좀 팔아 달라고 만수 할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볼일을 보러갔다.
북적거리던 장터가 썰물 빠지듯 조용해진다.
끼리끼리 둘러앉아서 배달되어온 잔치 국수를 먹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장사꾼 할머니는 비닐봉투에 찰밥을 싸 와서 친구한테 좀 먹어보라며 한 덩이를 던졌다.
해자 할머니와 영자 할머니는 장사를 다 하고 맞은편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다, 트럭을 운전하는 만수 할머니가 빨리 집에 가기를 기다린다.
만수 할머니는 시누이네 대파 네 단이 남았는데 두 단은 집으로 가져가고 두 단은 팔아야 되겠다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대파 두 단을 다 사 가지고 갔다.
만수 할머니가 일어나자 기다렸던 두 할머니도 웃으며 일어났다. 철수 할머니도 땅콩을 들고 일어났다.
차가운 바람은 황금시장을 한 바퀴 휘돌아나가고 황금시장을 떠나가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은 잘 익은 호박처럼 둥글고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