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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황금시장에 나온 참나무골 할머니들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8.27 15:56 수정 2024.08.27 16:16

편재영(시인·율곡동)

 만수 할머니 손자 트럭을 타고 황금시장에 나온 참나무골 할머니들, 차에서 내리기 바쁘게 짐을 수레에 싣거나 머리에 이고 골목 가장자리에 순서대로 자리를 정했다.
 좌판은 빈 포대와 지나간 달력으로 대신하고 단감은 열 개씩, 모과는 네 개씩, 서너 무더기씩 만들어 놓고 누렇게 익은 호박 네 개는 마치 기마전 하러 온 병사들 모양으로 만들었다. 한 무더기에 오천 원씩 받는데 덤을 준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손님 맞을 준비가 다 되었다.

 지난밤에 잠을 설쳐 부수수한 얼굴로 웅크리고 앉아 있다. 손님이 몰려오니 이곳저곳에서 사가라고 외치는 소리로 황금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만수 할머니는 단감을 쪼개서 손님들에게 맛을 보인다. 더 달라는 사람에게는 덤으로 주고, 다음 장날에도 이 자리로 찾아오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단감이 잘 팔리도록 참나무골 사람들 앞에도 가져다 놓고 장사를 한다.
 그 많은 단감을 다 팔고 조금 남은 홍시는 시누이 주면 된다고 걱정도 안 한다.

 부곡동에 사는 시누이는 화장을 곱게 하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처음으로 황금시장에 대파를 가지고 나왔는데 아는 손님이 나타나면 장사는 안 하고 숨바꼭질을 한다. 그래서 만수 할머니가 대신 팔아주기로 했다.
 만수 할머니가 옆에서 보니 해자 할머니는 잘 익은 호박 네 개를 오천 원 받으려고 한다. 큰 호박 하나는 이천 원에 팔면 될 것 같은데 팔지 않는다. 따로 팔면 작은 호박을 못 판다고 한다. 손님들이 큰 호박에만 관심을 보이자 만수 할머니가 해자 할머니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삼천 원 달라고 해봐.”
 작은 소리로 일러준다.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해자 할머니가
 “삼천 원입니다.” 하니 손님이
 “한 개가 삼천 원이면 너무 비싸다.”
 지갑에서 돈 오천 원을 꺼내주고 호박을 다 사서 가지고 갔다.
 병든 모과도 잘 팔린다.
 한때 모과도 인기가 좋았지만 요즘은 땅에 굴러다녀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데, 이 모과는 색깔이 곱고 고목에 약도 안 친 무공해라 하니 손님들은
 “벌레가 나올 것 같다, 칼로 썰기가 힘이 들겠다.”
 투덜거리면서도 생강 넣고 꿀에 제어 두었다가 감기에 차로 마시면 좋다고 덤까지 챙긴다.
 영자 할머니는 오란터밭에 가서 덩굴 콩을 뽑아서 포대에 담아서 가지고 왔다. 콩 껍질을 까면서 콩을 파는데 덩굴 콩이 귀하니 잘 팔린다.
 잡은 메뚜기는 없어서 못 판다.
 펼쳐둔 농산물이 하나, 둘, 장바구니에 담긴다.

 철수 할머니는 땅콩 두 되를 못 팔았는데 만 팔천 원 주려고 할 때 팔 걸, 이만 원 받으려고 안 판 것이 후회가 된다.
 오늘 장에 못 팔면 다음 장에 팔아야 되겠다고 한다.
 모과가 남아 있는 해자 할머니는 남산병원에 가야되고, 땅콩이 남아 있는 철수 할머니는 김천농협에 가야되니 좀 팔아 달라고 만수 할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볼일을 보러갔다.
 북적거리던 장터가 썰물 빠지듯 조용해진다.
 끼리끼리 둘러앉아서 배달되어온 잔치 국수를 먹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장사꾼 할머니는 비닐봉투에 찰밥을 싸 와서 친구한테 좀 먹어보라며 한 덩이를 던졌다.
 해자 할머니와 영자 할머니는 장사를 다 하고 맞은편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다, 트럭을 운전하는 만수 할머니가 빨리 집에 가기를 기다린다.
 만수 할머니는 시누이네 대파 네 단이 남았는데 두 단은 집으로 가져가고 두 단은 팔아야 되겠다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대파 두 단을 다 사 가지고 갔다.

 만수 할머니가 일어나자 기다렸던 두 할머니도 웃으며 일어났다. 철수 할머니도 땅콩을 들고 일어났다.
 차가운 바람은 황금시장을 한 바퀴 휘돌아나가고 황금시장을 떠나가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은 잘 익은 호박처럼 둥글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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