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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김천의 동제(洞祭)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4.24 15:40 수정 2024.04.24 15:50

마을의 안녕과 주민 화합을 위한 공동체 의식 동제
김천지역 대부분 마을에서 시행하며 지역발전의 초석
잦은 선거로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는 역사적 자산으로 활용

증산면 황정마을
증산면 황정마을
온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선거의 계절이 끝이 났다. 잘했던 못했던 당선이던 탈락이던 끝이 났으니 이젠 마음을 추스르고 분열을 잠재울 때가 된 것이다.
비단 이번 총선뿐 아니라 그동안 시도의원, 시장군수, 도의원, 도지사, 대통령, 교육감, 각종 조합장, 마을 이장까지 하는 선거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선거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지 오래이다. 선거를 통한 극단적인 대립과 반목이 일상화되고 국민간, 지역간, 마을주민간 갈등이 화합과 발전을 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김천문화원에서는 김천지역 각 마을에서 주민의 화합과 마을 발전을 염원하며 오래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시행해오던 마을 제사, 즉 동제에 대해 일제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 전 주민이 참여하는 마을 단위 최대의 공동체 의식인 동제의 실체를 살펴봄을 통해 각종 선거로 인해 상처받고 갈라진 민심을 화합하는 기회로 삼기위해 김천지역 동제의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동제란 무엇인가?

죽전마을 동제
죽전마을 동제
△대항면 죽전리 죽전마을 동제
동제의 역사는 ‘삼국지위지동이전’이나 ‘후한서’와 같은 중국 문헌 기록을 통해 우리나라 고대 삼한시대의 제천(祭天) 행사에까지 소급해 올라갈 수 있다. 이 제천행사는 봄에 씨를 뿌릴 때 하늘에 제사하고 가을에 곡식을 거둬들이고 나서 하늘에 제사해 잘 된 농사에 대해서는 하늘에 감사하는 국가행사로서 연일 음주·가무를 즐기며 놀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
동제는 고려말·조선초의 본격적인 자연마을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의 생산력 발전에 따른 자연마을의 형성 및 그에 따른 마을 단위 의례의 변화에서 동제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동제는 국가 단위의 대규모 제천의식의 축소된 형태의 지역 단위, 마을 단위의 제천의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불교국가인 고려시대에는 마을에 소재한 사찰을 중심으로 치러지던 관례를 깨고 유교 중심인 조선시대에는 향약의 보급과 더불어 지역 선비들 중심의 유교식 동제가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러나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촌락 분화가 보편화되고 자연마을 중심의 운영구조가 정착되면서 상민 중심의 공동제의가 다시 자리잡게 됐다.
먼저 동제는 대개 정월, 특히 대보름에 지내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명칭은 ‘동제’가 압도적이고 그 외에 동신제·산신제·산제·서낭제·당제·당산제·부군당·용왕제 등으로도 불린다. 동제는 유교식 제사가 도입된 이후 많이 쓰여진 것으로 보이며 산신제·서낭제·당제·용왕제 등으로도 불렸다. 한편 동제의 명칭은 대개 그 마을에서 공동으로 모시는 봉신의 명칭에서 유래하며 ‘산신’이 가장 대표적인 동신이다. 또 서낭신은 고대로부터의 적석 풍습과 연결되지만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전래돼 조선초 전국적으로 장려됐던 성황제로 변모된 다음 조선 중기 이후 다시 민간신앙화된 것으로 보인다. 신당은 신목·돌무더기·당집·굴당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마을 입구의 오래된 나무 즉 동목이다. 이는 고대로부터의 거목숭배와 연결된다. 또 신목 밑에 돌제단을 마련한 경우도 많으며 때로는 솟대·돌무더기·서낭당과 더불어 위치하기도 한다.

김천지역의 동제(洞祭) 현황
예부터 김천지역에서 민속신앙의 하나로 전승된 동제는 마을주민 전체가 주체가 되는 향촌 주민의 제사의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제는 우리나라 고유 민속신앙의 유형 가운데 가장 기초적인 바탕을 이루며 상대인의 사회제도를 유지 강화시키는 기본 요소로서 전통성을 지니고 전해 오는 순수한 민간 토속신앙이다. 역사가 오래된 전통적인 마을에는 그 마을을 수호해 주는 동신(洞神)을 모셔놓고 제사를 올리며 주민들이 평안하고 잘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제례의식이 바로 동제인 것이다.

동제의 명칭과 속성
동제는 마을의 수호신에게 풍년과 주민공동의 복덕을 축원하는 전통적인 제사의식이다. 제사 참여자는 엄선된 부정없는 제관으로 하며 제례 절차의 진행과정이나 제단에는 잡인의 참여를 금기로 하고 있다. 이러한 마을 수호의 동신제 명칭을 일반적으로 호칭하는데도 여러 종류가 있다. 동제, 서낭제, 동고사, 당제, 당산제, 별신제 등으로 부르는데 이것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부른다. 마을을 보호하는 동신의 상징물로 생각할 때 밖에서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재액, 재앙을 막아서 마을이 평안하고 주민이 잘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준다고 믿는다.
주민들이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정월에 동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통해 마을에 재액이 없이 일년을 무사하게 넘기도록 빌거나 자손들이 외지에 나가 있어도 무사하기를 빌었다. 또 일년농사가 잘되도록 때에 맞추어 제사를 올리게 됨은 모두 수호신이 재앙을 막아주고 어려운 일을 풀리게 한다는 전지전능하신 능력과 역할을 믿는데서 비롯된 것이라 보인다.

동제 장소의 형태
김천지역의 동제당 형태는 신수를 당나무, 당수나무, 동시나무라 하며 신목(神木)에 왼새끼를 둘러서 일반 수목과 구분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리고 또 그 아래에 돌무더기, 혹은 조산형태의 제단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산상, 신당, 암석, 수목, 입석, 장승으로 신당(神堂)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천지역에서도 수목을 중심한 신당형태가 단연 으뜸으로 차지하고 있다.

동제의 목적과 시기
김천지역에서도 동제를 올릴 때 항상 풍년의 기원과 재해의 방지에 주목적을 두고 있었다. 지금도 동제를 올리는 곳은 질병, 화재 등의 재액을 물리치고, 마을 전체가 평안하여 부락민들이 잘 살 수 있고 집집마다 행운이 있어서 하는 일이 잘 되기 위해서 제사를 매년 1월 중에 한번씩 지내고 있었다.

제관(祭官)
동제를 모시는 제관은 그 마을에서 제일 깨끗하고 정갈한 사람을 제주로 삼았다. 보통 동제를 자정에 지내고 제주집에서 음복할 때, 동네 회의를 개최해서 다음 해 정월 동제 때 준비 할 유사와 제주를 각각 선정했다. 이때 선출된 제관은 뽑힌 날로부터 다음해 정월 제사일까지 자신을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동네의 초상이 나도 제관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동네에서는 그것을 예외로 인정해 주었다.

동제의 의미
마을주민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주기적으로 매년 같은 때에 마을 수호신을 모신 신체(神體)나 신당(神堂)에서 동제를 올리고 주민의 평안을 빌고 질병과 재액으로부터 벗어나 풍년농사가 되도록 빌었다. 동제의 신체를 모시는 제단에는 평상시에도 금기사항이 지켜지고 있어서 부락민 누구도 동신을 모시는 신당에서는 행동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

양천리 중리마을 동제
양천리 중리마을 동제
△양천동 중리마을 동제
동제의 기능
동제는 오랜 역사를 통해 민중생활을 지배해 온 집단신앙의 한 형태다. 민간신앙 중 동제가 오랜 세월을 두고 오늘날까지 전승돼 온다는 것은 그 동제가 곧 민중의 지지와 공명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명과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동제가 민중생활에 음으로 양으로 많은 영향을 끼쳐 주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을주민의 안녕 축원의 기능
동제 기간이 접해지면 일반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키고 모든 주민에게 정갈한 삶을 요구한다. 그리고, 마을입구, 제당의 수목, 제관, 축관의 집에 모두 금계 줄을 치고 붉은 황토흙을 뿌린다. 아울러 온 동민들이 모여 제단중심으로 주위를 청결히 하고 부락공동으로 대청소를 하게 된다. 주민과 제관에게 각종의 금기사항을 준수하게 하는 것은 신성기간으로서 신년의 첫 출발인 정월 대보름날 아래에서 경건히 산신과 마을 수호신에게 머리 숙여 금년 일 년 농사대풍과 안녕, 무병, 무탈 등을 축원하는 것이다.

◇사악한 기운을 막는 기능
마을 수호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기능 가운데 실질적 기능은 일 년 내내 주민들의 재앙을 물리치고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일이다. 만약 동제를 모시지 않으면 마을의 재앙과 흉년이 든다고 지금도 믿는 부락이 많다. 또, 제단 주위에서 신목에 해를 입히거나 불결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이름 모를 질병으로 죽게 된다고 믿는다. 이는 동제의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기능이며 각기 많은 경비를 부담하면서 동제를 지내는 이유이다. 그리고 또 한 해의 대풍을 바라는 풍요적 기능으로서 전체 동민들이 동제의 성실여부에 따라 한 해의 풍년과 흉년이 달렸다고 생각한다.

◇주민결속의 기능
통합적인 기능으로서 주민의 일체감을 제사기간 중 금기내용으로서 나타내며 제사 끝낸 후의 음복에서 주민 전체가 더 한층 일체감을 갖게된다. 제물이 적으면 제사 진행자나 마을 유지들만이 모여서 음복을 하는 수가 있으나 보통은 전 동민들 중 남자들만 참가하고 축제적인 성격을 나타내어 별신굿 성격의 풍물놀이와 민속놀이를 통한 주민 단합적 행사가 이어진다. 또한 제사 후에는 음복을 겸한 회의가 개최되기도 한다.

실제 김천지역 동제 마을 사례
<어모면 옥율리 노리기마을 동제>
어모면 옥율리 노리기마을에 동신제를 올리는 느티나무가 두 그루 서 있었다. 수령이 약800년 되는 것으로 우측에 있는 나무는 여신으로 큰 바위 기둥으로 나무를 바치고 있었고 좌측나무는 남신으로 상징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힌 그루는 수년전 고사하고 말았다.


◇동제의 명칭


△1980년대 촬영된 노리기마을 남신목(왼쪽)과 여신목
이 동제에서 대상으로 하는 신은 문암산 산신이다. 산신은 일반적으로 호랑이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랑이는 두려움과 신비감을 주는 수호신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됐으며 특히 산촌지역인 이곳의 주민들에게 있어서 호랑이의 초인적인 위력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호랑이의 패해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을 것이니 그러한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예방하고 그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호랑이를 위하는 산신제를 지내지 않을 수 없게 됐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호랑이의 위력을 인간의 편으로 유도해 호랑이의 가호를 받아 안녕과 풍요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어느 개개인의 소관사가 아니고 부락 전체 주민의 공동운명과 직결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이러한 산신제가 출발됐을 것이다.

◇제일
제일은 매년 정월 초 9일날 한밤중에 거행한다. 즉, 설날을 보내고 가장 가까운 산신 하강일을 택하여 자정에 제사를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사일은 보통 음력 정월 초 9일 전후하여 택일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제주
제주의 선정은 마을의 장년층에서 생기에 맞춰 품행이 방정하고 성실한 자로 제사 칠일 전까지는 결정돼야 한다. 이때 제주는 상신당 제주 1인, 하신당 제주 1인, 합해 2인을 선정하게 되는 바 제주로 선출될 수 있는 조건은 아래와 같다.
△상주가 아닌 자. △한 해 동안에 어떤 불상사도 없었던 자. △가내에 임신한 여인이 없는 자. △가급적이면 가족의 수가 적고 집안 살림이 정결한 자.
이상과 같은 조건에 합당해 부락민의 중의에 따라 제주로 선임되면 그는 그날로부터 임시사제가 돼 부락의 공동운명을 신에게 고하고 신의 가호를 기원해야할 막중한 사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해 선출된 제주는 신의 점지자로서 세속으로부터의 유리를 위해 각종 금기가 요구되는 것이니 이때 금기사항 중 중요한 것을 들면,
△합방을 금할 것. △매일 냉수에 목욕제계를 하고 정결한 복장을 할 것. △원거리 외출을 금할 것. △부정한 언동을 금할 것. △부정한 말을 듣거나 부정한 것을 보지 말 것. △육식을 금할 것. △제주의 집 문전에는 황토를 펴고 왼새끼줄로 금줄을 늘여 잡인의 접근을 금하게 할 것. △항상 마음을 정결히 할 것 등으로 금기사항을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그는 신성한 사제자가 되어 마을 전체 주민의 안녕과 부락신의 가호를 기구할 수 있는 공적주술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제례 비용
제사에 소요되는 일체의 경비는 옛날에는 대동계의 계급에서 일부, 동답 수입에서 일부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기부에 의해 보충한다. 이처럼 비록 적은 양이지만 전체 주민의 정성에 의해 모여진 제물로 제를 거행함으로써 주민은 신으로부터 균등한 가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제는 지금은 대부분 마을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 할수 있는 마을의 무사안녕과 공동발전, 주민화합과 단결을 염원하는 소박한 공동체적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동제를 복원하고 재현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는 역사를 바로 알고 이해하는 기회를 통해 잦은 선거를 통해 갈라지고 혐오하는 오늘날의 사회 세태를 바로잡는 계기로 삼는 것도 좋은 방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송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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