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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수필- 구수의 한평생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1.25 09:34 수정 2024.01.25 09:38

이태옥(수필가·전 김천문인협회 회장)

구수는 죽었다. 아니 죽었다기보다는 돌아가셨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지 모른다. 나이로 봐서도 이미 쉰아홉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구수는 장가를 늦게 들어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을 하나 두고 있다. 이 딸로 인해서 그나마 생명 연장이 되었으리라고 자기는 물론 주변에서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구수는 운명적으로 불행을 안은 장애자로 태어났다. 가정은 부유하지만 장손으로는 너무나 모자라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니 어른들은 집안의 업으로 여겼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온전하지 못하여 늘 가정에 짐이 되어 자랐다.

초등학교도 가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어느덧 나이는 먹어 동생들부터 모두 장가시집을 다 보내고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결혼을 했다. 아내는 결혼해서 한두 해 동안은 그대로 가정을 유지했다. 아이까지 낳았다. 한두 해 잘 사는가 싶더니 아내가 바깥을 오가는 일이 잦아지고 이래저래 방황하다가 집을 나가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구수에게는 목숨 자체였다.

집 나간 아내는 아주 소식을 끊고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딸이 차츰 자라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에 들어갈 무렵이 되어서야 어디서인지 모를 우편물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집 나간 어미와 딸과의 왕래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과는 전혀 왕래가 없다.

딸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버지와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다. 대학에 들어가 한 번 떠난 뒤로는 연락마저도 두절되다가 돈이 떨어져 대학 등록금이나 용돈이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것 외에는 전혀 딸이 있는 둥 마는 둥 소식이 소원했다. 그래도 아버지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매일 밤낮없이 생각나는 것이 딸의 해맑은 얼굴만 떠오른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몸을 지축거리면서 언젠가는 웃으며 나타날 딸을 그리며 등록금이나 용돈만큼은 틀림없이 보냈다. 옆에서 무어라 해도 그 정성은 눈물겨웠다. 그러나 부모 마음 아는 애들은 이미 애가 아니 듯 딸은 도대체 연락이 드물었다.

어제도 등록금을 부치고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났지만 요즘 와서는 몸도 마음도 지치기만 한다. 마누라는 달아나고 아이는 연락마저도 거의 끊고 이래저래 마음을 달랠 길이 없으니 몸도 더욱 병들어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미로에서 자꾸 마음은 더 약해지고 더구나 몸이 성치 못하여 요즘 들어서는 몸도 마음도 아팠다. 그래서 밤이면 전전반측하며 딸을 그리며 죽음 연습도 생각해 보는 구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등록금을 부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움에 들떠 전화를 받았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등록금 외에 필요한 용돈이 모자라 더 보내라는 간곡한 딸의 청이다. 맹랑한 일이었다. 아직 농번기라 농자금이 모자라 등록금 마련에도 손이 부끄러운 판에 또다시 남들에게 돈을 빌리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딸의 청이니 거절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구수는 이 돈을 장만하려고 동분서주하며 다녔다. 경제가 어렵다는 세상이어서 말 붙일 집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웃집에 포도 돈을 목돈으로 마련했다는 소문에 염치불구하고 들어가 사정하여 빌려서 이제는 겨우 안도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차선의 넓은 길을 밤중에 횡단하는 중에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사이 달려드는 차에 피할 여유도 없이 치명상을 당하고 말았다. 아픈 다리로 남처럼 빨리 건너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딸에게 보내야 하는 돈은 결국 보내지도 못하고 길에 깔아 버리고 뺑소니차는 행방을 알 길이 없다.

병원에 며칠 있는 동안에도 돈이 겁이 나서 아픈 몸을 이끌고 퇴원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딸의 돈 문제였다. 방도를 찾지 못하고 밤마다 앓다가 딸 생각에 울다가 그만 영영 일어나지도 못하는 신세로 드러눕고 말았다. 아버지를 찾지도 않는 딸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지만 그 정성도 소진했는지 혼자 가버렸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의 상에도 코끝도 보이지 않았고 다시 찾지도 않았다. 다시 오지 않을 아내와 딸을 그리다가 혼자 세상에 지치고 삶에 기진맥진하여 가버렸다. 성치 않은 몸으로 태어나 가정에서부터 버림받고 세상에 소외당하고 고뇌하며 살다가 간 한 장애인의 운명을 그대로 보여준 구수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지만 사회가 외면하는 장애자의 고군분투는 처절하고 안타까운 생일 수밖에 없다. 온전하게 살아도 버거운 세상살이를 인정도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인가. 남의 일 같지 않은 사연이 우리를 애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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