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2002년 7월 30일의 일이다.
장마가 좀 길어지는 듯하더니 더위가 맹위를 떨쳐 숨이 막힐 지경일 때였다.
대구에 사는 6촌 동생이 김천에 왔다. “불치병이 들어 앞으로 얼마 더 살지 못할 것 같아 죽기 전에 형님을 꼭 보고 싶어 왔다”는 동생의 병색이 짙고 허약해진 몸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쪼록 빨리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는 말 외에는 달리 위로할 말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계사 사무실을 번듯하게 차려놓고 바쁜 일정을 보내더니 갑자기 불치병을 얻어 자신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고령인 당숙모님의 고통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숙모님,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아우와 여기까지 오셨어요?” 하니 “무슨 일이 있어 온 게 아니고 단지 형님이 보고 싶다며 무턱대고 가보자고 해서 왔다”는 했다. 너무도 고마운 말씀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어느 식당으로 모실까 생각하다 매운탕 요리로 유명한 집이 있어 거기서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 할수록 얼굴이 창백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순간적으로 더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가서 쉬도록 권했다. 문밖에 나와 배웅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런데 헤어진 지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집으로 가던 차 안에서 갑자기 복통을 일으켜 앰블란스로 대구 모 큰병원으로 긴급후송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차 안에서 그만 의식을 잃은 채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아직도 40대 젊은 나이에 어린 자녀와 노모님을 남겨 두고 자식이 먼저 저세상으로 훌쩍 떠나 버린 것이다. 인생 세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할 일이 태산 같을 텐데, 그렇게 가다니! 떠나기 전 손이라도 한 번 더 꼭 잡아볼 걸, 하는 후회스러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어쩌면 그렇게도 허무하게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몇 시간 뒤에 죽으리라고는 상상이나 했겠는가. 형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병약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나를 보러 왔단 말인가!
세상사 고르지 못한 것이 인생사(人生事)이던가. 돌이켜 보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절감하게 된다.
집 앞에서 마지막 본 아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정직하고 착하게만 살다간 아우에게 마음 깊이 명복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