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피일 미루다 모처럼 미장원에 들러 파마를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교통사고가 났으니 빨리 오라”는 남편의 흥분된 목소리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는데 뚝, 끊는다. 핸드폰이 무겁다고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라 남에게 빌려서 하다 보니 그랬나 보다.
이해는 되지만 너무 하다 싶어 미용사에게 볼일 좀 보고 오겠다며 스카프를 쓰고 미용실을 나왔다.
어떻게 사고가 났을까? 사람은 안 다쳤을까? 만약에 합의를 할 경우 파마 값으로 오만원만 가지고 나왔는데 어쩌지? 집에 가서 돈을 더 가져갈까?
남편이 애타게 기다릴 텐데, 혼란스러웠다. 에라 모르겠다, 가보면 알겠지.
급할 때 사고가 난다는데, 마음을 진정시키며 운전을 했다.
오라는 곳에 도착하니 맞은편 인도에서 남편이 손을 흔든다.
평소 차가 뜸한 길인데 큰 도로 공사 중이라 차를 통제시키니 이 길로 차량 통행이 많은가 보다.
이 때문에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는 위험한 길을 건너야만 했다.
현장에 가니 우려했던 것보다 작은 사고라 안도감과 함께 허탈감이 밀려온다.
인도로 옮겨진 남편의 오토바이는 부서졌고 할아버지의 짐수레도 조금 상했다.
남편은 다리에 상처가 나서 절뚝거리며 왔다 갔다 한다. 할아버지는 멀쩡하다.
할아버지는 짐수레 받침대를 다쳤으니 물어내라며 나무 그늘에 앉아 있다.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짐수레가 나타났다 하고 할아버지는 냇물을 물통에 담아 짐수레에 싣고 채소밭에 물 주려고 도로를 건너가는데 갑자기 오토바이가 나타났다고 한다.
남편에게 마시지도 않은 술을 마셨다느니, 오토바이가 너무 빨리 달려왔다느니 억지를 쓰는 할아버지 태도가 수상쩍다.
사정이 딱하면 물어 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남편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얼마나 많은 말을 했는지 입술에 침이 허옇게 말라 있다.
손수건을 꺼내 남편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할아버지, 짐수레 물어 줄 테니 오토바이 고쳐 주고 병원비 부담하시겠어요?” 물으니 그렇게는 못 한단다.
“할아버지는 도로를 무단횡단하셨잖아요?”
“밭이 요긴데 이리로 가야지 어디로 가!”
남편은 도저히 타협이 안 된다며 경찰서에 전화하라고 성화다.
잠시 후에 순찰차 두 대와 경찰관 네 명이 와서 인적 사항을 기록하더니 오토바이는 작은 짐수레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할아버지는 무단 횡단한 잘못이 있다.
합의 안 하면 할아버지가 더 손해 볼 수도 있다.
할아버지 설명을 다 듣더니 “왜 경찰을 부르고 그래?” 태도가 확 바뀌어 투덜거리며 짐수레를 끌고 돌아간다.
어이가 없다. 상대방 입장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고집하는 할아버지가 여러 사람을 힘들게 했지만 서로 운이 나쁜 탓으로 돌린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무사한 것이 다행이다. 수고한 경찰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누군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퇴직한 남편 집에 두면 근심 덩어리, 데리고 다니면 애물단지, 혼자 내보내면 사고 덩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