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편지를 쓴다는 말은 들어보기 힘든 말이 되고 말았다. 손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건 더 힘든 일이 되었다. 간단한 문자나 카톡으로 소식을 전하다 보니 손편지를 받는다는 건 생각조차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올 1월의 일이 문득 생각난다. 중국으로 공부하러 가기로 한 딸이 어학연수를 떠나고 난 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딸이 준 가방에 곱게 접은 손편지가 들어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이 앞서 읽기가 힘들었다. 많이 반대했던 일 년의 시간이 딸의 작은 손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그 마음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와 아빠에게 따로 편지를 써서 봉투에 담아 넣어 둔 고마운 마음, 가슴이 먹먹해서 감정 정리가 잘되지 않았다.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혼자 보내는 게 잘하는 것인지, 판단도 흐려지고 그 순간은 딸보다 더 어려지는 엄마였다.
어른스럽게 써 내려간 자신의 각오들을 나열해 놓은 속 깊은 딸의 마음을 전해 받으니 한편으론 안심도 되었다. 이렇게 딸이 많이 컸다니,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자기가 갈 길을 스스로 찾아서 떠날 줄 아는 모습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헤어짐은 아쉬웠지만 좋은 마음으로 보내야 한다는 걸 알기에 마냥 울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처음엔 많이 힘들 거란 걸 알기에 마음이 아렸다. 혼자 가는 뒷모습에 눈물 없는 남편도 고개를 돌렸다. 성장하기 위해서 홀로서기 하러 가는 모습에 힘을 주어야 하는데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야속했다. 애써 울음을 참고 집으로 오는 차에서 편지와 함께 터져 버린 울음은 한참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손편지가 주는 힘은 대단하다. 짧은 문자나 카톡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상대방의 글씨체에서 진실이 더 잘 전달되는 것 같다. 가끔 딸의 편지를 꺼내 본다. 어릴 때도 엄마와 편지를 주고받은 탓에 어색해하지 않는다. 날 닮아서일까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시도 써서 같이 느낌을 주고받고 책 읽은 느낌도 편지로 주고받곤 했었다. 독서량이 많은 탓에 가끔 내가 힘들 때도 있었던 여러 시간이 편지에 담겨 있었다. 말로는 못한 글들이 줄을 서서 전해져 왔다. 마음이 통한다는 걸 그 순간에는 느낄 수 있었다. 느린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기에 빠름만을 원하고 싶진 않다. 은근히 전해지는 그 진실을 아끼며 꺼내 보고 싶다.
맑은 가을날에 이런 손편지를 받는다면 더 기쁘지 않을까? 무뚝뚝한 남편도 가끔 꺼내 보는 딸의 편지가 우리에겐 아주 값진 선물인 셈이다. 매일 톡을 하지만 비교할 수 없다. 가슴 아픔을 즐길 수 있고 지난날을 위로받을 수 있는 느린 시간이 정겹다. 편지를 쓰는 내내 생각했을 고마운 기억들을 오래 간직할 수 있어 좋다.
가을이 온 요즘은 괜히 분위기를 잡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생긴다. 그 마음 고스란히 편지에 담아 써 봐야겠다. 엄마의 가을은 이렇다고, 향기 나는 연필로 꾹꾹 눌러 써서 딸에게 보내야겠다. 중국에서 맞은 딸의 가을이 고스란히 담겨 답장으로 전해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