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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차창에 비친 황금들판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19.09.30 14:37 수정 2019.09.30 14:37

류성무(수필가·전 김천시농업기술센터 소장)

망향(望鄕)의 시름으로 고향은 만년 고향, 타향은 만년 타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상주농진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선 무궁화호에 올랐다.
농진회는 공무원 재임 시 같은 고향의 퇴직 계장과 과장들이 조직한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모임이다. 매월 모임을 하고 지난 세월 한 직장에서 동고동락한 때를 회상하면서 황혼을 달래기도 한다.
고향 가는 기차 안에서 영화 스크린처럼 지나가는 차창을 스쳐가는 가을 단풍은 여름 폭염과 고온에서 겨우 벗어나 한숨 쉬며 밝게 물들어가고 있다.
특히 차창에 비치는 황금들판은 고난과 역정의 추억을 되새김하게 한다.

가을이면 벼농사로 온 들녘이 황금빛이지만 60년대와 70년대의 극심한 식량난에 초근목피로 입에 풀칠하면서 끼니를 때웠고 보릿고개를 체험한 참혹한 시대를 회상한다.
당시 정부에서는 외미(外米)에 의존하면서 주곡자급을 위하여 식량증산이 국가시책의 지상과제였다.
당시 필자는 농촌지도소에 근무하면서 쌀 증산시책으로 내병다수성 품종인 기적의 볍씨 통일벼를 필리핀에서 도입하여 농촌지도사의 열정과 희생정신으로 재배 지도한 결과 1974년도에 4,000만 석 생산으로 쌀 자급을 성취하였다.
이는 농촌지도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또한 도전과 열정으로 이룩한 한국농정사의 금자탑을 이룩한 주역이 농촌지도사였음을 자부한다.

상주는 벼 생산량이 전국에서 최고이며 통일벼 수매량이 강원도 전체수매량보다 100가마니가 더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차창으로 보이는 들녘을 구석구석 오토바이로 순회하면서 못자리 설치부터 수확기까지 노심초사 증산 지도한 흔적이 과거의 추억으로 회상되고 현지 지도한 그 기억에, 차창으로 비치는 황금들판은 타 지역의 가을 들판과는 감회가 달라서 본제로 수필을 쓰게 되었다.

우리나라 벼 재배는 3,0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쌀은 한민족의 영원한 주식이다.
우리 문화는 농경문화로 쌀에 얽힌 희로애락과 주곡농업으로 쌀의 영양분은 탄수화물이 주성분이며 영양가가 높고 쌀밥은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쌀은 한국농업의 상징이며 문화의 뿌리이다. 홍익경제(弘益經濟)로 산업의 기본이며 농업소득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좀 더 분석해보면 쌀농사는 푸른 공간조성 및 대기정화와 저수량은 우리나라 6개 댐의 2.5배이며 그 수량(水量)을 논에 저수하여 토량유실과 홍수방제의 역할도 한다.
또한 논이 없고 밭만 있으면 여름에 발바닥이 뜨거워서 걸어서 다닐 수도 없을 것이다.
짚의 문화에서 볏짚의 용도는 가마니, 멍석을 비롯한 수많은 가정용품을 만들고 가축사료화 퇴비들로 벼 뿌리부터 이삭 끝까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벼와 볏짚이 생활에 이용되고 있다.
식생활이 문화의 변천에 따라 쌀 전성기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이 1970년도에 136kg이던 것이 2017년도에는 63.2kg으로 그 양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국민의 주식으로 추앙받는 쌀이 소비 저하로 지금은 천대받는 식품으로 전락하고 보니 쌀증산을 위하여 심혈을 바친 주역들은 안타깝고 애통하기 짝이 없다.
모든 물가는 다 올라가도 식품 중에 쌀값은 오히려 하락해가니 그 대책으로 정부에서는 쌀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시장경제로 상승하는 쌀값과는 달리 변동직불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농업인은 불만이다.

쌀값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은 서구식 식생활로 인하여 쌀 소비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쌀문화를 계승하고 쌀밥으로 체질을 보전하는 차원에서 쌀 음식끼니를 건너지 말고 계속 우리 농업경제와 국민건강을 위한 쌀의 이용을 재고해서 나라사랑 쌀사랑을 함께 하여야 우리 민족의 쌀 문화의 얼을 견지하고 계승발전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지난 역경(逆境)을 회상하고 추억으로 차창에 비치는 들판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 듯 상주역이라는 안내방송이 하차를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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