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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아버지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4.01.23 13:58 수정 2024.01.23 14:53

한외복(수필가·선주문학회 회원)

깨끗이 행주질 된 주방 식탁에 수저 두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싱크대 위 작은 김치통에는 시중에서 파는 일회용 국 몇 가지가 줄 맞추어 들어있고 설거지 마친 개수대에는 핑크빛 플라스틱 바가지에 2인분의 마른 쌀이 들어있다.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지 않는 주말이라 아버지 손수 저녁밥 할 쌀을 미리 준비해놓으신 듯하다.
전기밥솥을 열어보니 호빵 두 개가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 두 분이 드실 간식일 텐데 배가 고파도 견디시는지 입맛이 없어서 안 드셨는지 해가 기우는데도 그냥 있다.

뜨끈한 시래깃국을 좋아하지만 시래기 삶아 국 끓여 줄 사람도 없는데 “너라도 가져다 먹어라”며 지난해 가을 끝자락 줄에서 걷어 박스에 담아주셨다.
시래기 삶을 시간이 없어 베란다 구석에 두었던 시래기가 갑자기 생각나 부랴부랴 삶아서 국을 끓여 친정으로 갔다.
곰국과 시래깃국 불고기를 냄비에 옮겨 담으며 저녁에 데워 드시라고 했다.
“이런 것들을 왜 해왔느냐”며 주방을 맴돌며 아버지 손 닿는 곳에 갈무리하시는 아버지. 어머니 거동하실 적에는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 주방 문턱을 넘어 본 적이 없으셨는데 ”내 팔자인 갑다“ 그렁그렁 울먹거리시느라 말씀을 제대로 못하신다.
”너그 엄마 하루 세 번 약 챙겨 먹이고 내 약 찾아 먹는 일도 쉽지 않은데 너그 엄마 화장실 갈 때마다 부축해야 하고 세 끼 식사 차리고 주방 식탁까지 데리고 다녀야 하니 하루가 바쁘다.”

그저께는 아버지 병원 정기검진 가셔서 작은아버지를 만나 두 분이 손잡고 실컷 우셨단다.
지금까지 자식들한테 병원비 한 푼 신세를 지지 않은 두 형제분이다. 올해 여든다섯 아버지가 4년 전, 여섯 살 아래 작은아버지는 2년 전 두 분 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으셨다.
생업을 내팽개칠 수도 없고 가까이 사는 자식들이 부모님께 들락거리기는 하나 삼시 봉양을 못 하니 아버지께서 거동 불편한 아내 병수발드랴, 본인 투병하시랴. 오죽이나 힘들고 서러우실까 짐작만 하는 자식이다.

“아버지 저녁에는 이거 데우고 저거 끓이고 엄마는 변비 있으면 이거 드리고 저거 드리고~”
목에 걸린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저는 나쁜 딸년입니다”를 꾹 눌러 삼켰다.
집에 간다고 나서니 흰 봉투 세 개를 들고나오셔서 그중 하나를 건네 주신다.
겉봉투에 ‘엄마 때문 애썻다’가 적혀 있다.

“너그 엄마 이번에는 꼭 죽는 줄 알았는데 너그들이 살렸다. 너그가 애썼다. 삼십만 원씩 넣었다 들락거리며 그것보다 더 많이 썼겠제. 너그 엄마 요양원 안 보내려면 나도 하는 데까지 해볼끼라”
“아부지이~ 이 돈을 받아서 어쩌라구요.”
회갑에 중풍으로 쓰러지신 할아버지 대소변을 20년 받아내며 봉양하시느라 아버지 어머니께서 힘드셨고 지금은 거동 못하는 아내 병수발 드시느라 아버지가 제일 고생하는데 아버지는 누가 보상을 해주나요.
저는 나쁜 딸년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조부모님께 하셨던 것처럼 조석으로 봉양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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