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오피니언 종합

수필- 가을 분장사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3.09.13 14:24 수정 2023.09.13 14:24

정성천(수필가·전 김천여중 교장)

가을이 미묘하게 물들기 시작한다. 가을은 저렇게 아름답게 물들어야 하는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숨을 헉헉거리게 하던 그 뜨거운 녹색들 속 그 어느 곳에 저토록 아름다운 색깔들이 숨어 있었던 걸까? 끝 모르게 부풀어 올랐던 녹음 잔치의 절정은 이제 그 흥이 다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가을을 저토록 아름답게 분장시키는 것일까?
지난여름은 이별을 앞둔 여배우의 마지막 사랑처럼 그 숨결이 뜨거웠다. 녹작지근하던 몸이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번들거린다. 단내 나는 입김이 뜨겁게 목덜미와 귓불을 훔치고 서로 장단을 주고받던 격렬한 몸부림이었다. 모든 것들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던 마지막 화산분출이었다. 마지막이라서 더 뜨거웠고 그만큼 더 허무한 것이 이별의 사랑 축제다.

격렬한 사랑의 흥분이 끝난 뒤 잔잔하게 잦아드는 홍조처럼 가을은 허전하게 물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불을 지펴야 한다. 뜨거운 열정이 없어도 한 번 더 불타올라야 한다. 실제가 아닌 사랑 연기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들뜬 흥분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무대 위에 서기 위해 분장을 해야 한다. 이별의 서러움은 한바탕 농염한 연극을 치르고 난 뒤 쓸쓸함으로 울어 주리라. 뜨거운 열정은 식었으나 실제 사랑보다 더 감칠 맛 나는 사랑 연기를 위해 멋있는 분장을 해야만 한다. 지난여름 그 녹색의 열기는 육체를 태우는 실제 사랑이었다면 지금 이 서늘한 가을 단풍은 사랑을 연출하기 위한 화려한 분장이다. 가을 분장을 위해 많은 분장사가 수고를 한다.

제일 먼저 은은한 기초화장을 하는 분장사는 가을 달빛이다. 새뜻하게 윤기 도는 억새와 갈대의 꽃 붓으로 밤새 밑그림 색을 칠한다. 억새와 갈대 붓의 윤기는 가을 밑그림을 대충 다 그리고 나야만 푸석한 보풀이 되어 멀리멀리 날아갈 수가 있다. 얼마나 열심히 그렸느냐에 따라 다음 생이 달라질 것이다. 은은한 가을 달밤을 며칠 지새고 나면 무논의 벼들이 제일 먼저 녹색 물이 바래어지고 연노랑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달빛 머금은 밤을 며칠 보냈을 뿐인데 산천초목들은 화려하고 짙은 녹색에서 사십 대 아낙처럼 차분하고 소박한 녹색으로 변한다. 무논의 벼가 밝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면 논두렁 잡초들은 그 황금빛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듯 칙칙함으로 물들어간다. 녹색에 갈색을 섞은 듯 명도와 채도가 떨어져 어둡고도 칙칙하겠지만 누구나 한번은 그런 칙칙함으로 물들어 보고 싶기도 한, 가슴에 묘한 기분을 주는 그런 색이다.

가을 달빛으로 차분해진 녹색에 이제는 이슬과 가을비가 그림을 그린다. 이슬과 가을비는 가을의 주제를 가장 잘 살리는 주된 분장사들인 것 같다. 이슬이 섬세하게 여러 번 반복하며 오묘한 색을 물들이는 세필 분장사라면 가을비는 큰 붓으로 칠하고 싶은 곳만 강렬하게 한두 번 칠을 하는 대필 분장사인 것 같다.
 
 무논의 벼들과 은행나무 가로수, 단풍나무 붉은 숲들은 가을비 큰 붓으로 그린 것 같고 검은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담쟁이덩굴의 빨간 잎과 노란 잎, 도로 옆 낮은 언덕을 듬성듬성 물들이는 싸리나무의 황갈색 잎, 산비탈 커다란 굴참나무 밑에서 더부살이하는 화살나무의 붉은 잎, 칙칙한 덤불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마삭줄의 빨간 잎은 세필 분장사인 이슬이 아니면 그런 그림을 그릴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덩치에 비해 잎이 터무니없이 작으면서 단풍은 밝은 노랑, 주황색, 선홍색, 검붉은색, 갈색 등 나뭇잎마다 다양하게 물이 드는 느티나무는 세필 이슬이 아니면 그런 섬세한 작품을 그 누구도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이슬은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물들이는 인내심 있는 분장사지만 가을비는 성질이 급해서 한 번의 붓질로 나무마다 독특한 색으로 물들이려고 곧잘 덤비기도 한다. 그래서 가을비는 너무 세차게 내리거나 강한 바람을 동반하면 그해 가을 그림을 망쳐 버릴 수도 있는 아주 선이 굵고 거친 분장사이기도 하다.
이슬은 요술 물감을 사용하는 분장사이다. 이슬이 푸른 잎에 내릴 때는 맑고 투명하나 햇볕에 내어 말리면 여러 가지 색들의 잎으로 변한다. 마치 그냥은 보이지 않다가 촛불에 갖다 대면 글씨가 나타나는 요술 물감처럼 햇볕에 말리면 다양한 색들이 나온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이슬이 벚나무 잎을 어떻게 물들여 가는지 지켜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새벽마다 이슬은 모든 벚나무 잎들을 흠뻑 적시지만 물들어가는 속도는 나뭇잎마다 다 다르다. 이슬에 젖은 잎들을 가을 햇볕에 말리면 처음에는 녹색의 푸른 물이 서서히 바래져 연두색으로 변하고 이내 연한 노란색이 되어 버린다. 반복되는 이슬과 햇볕의 작업으로 녹색 물이 빠진 곳에 이제는 붉은 색조가 서서히 스며든다. 그래서 벚나무 잎은 노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마지막엔 밝은 적색으로 변한다. 밝은 적색이 벚나무 단풍의 클라이맥스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절정의 순간이 매우 짧듯이 벚나무 단풍도 절정의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 짧은 절정이 지나면 서서히 수분이 빠지기 시작하고 야위어간다. 그리고 밝은 적색에서 검붉은색으로 변하고 아름다운 낙하를 꿈꾸며 이내 갈색으로 변해 간다.
하지만 이슬이 애써 물들여 놓은 아름다운 벚나무 단풍들이 거친 가을비에 절정도 연출치 못하고 떨어져 내릴 수도 있다. 우리는 단풍의 절정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애꿎은 가을비가 단풍을 떨어지게 하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가을비에 젖은 채 포도 위에 누워 있는 단풍도 가을 분장사가 그려내는 또 하나의 가을 정취가 아니겠는가?
 
 칠보단장에 입술은 붉게, 이마는 희게, 눈썹은 검게 짙은 분장을 하고 감색 치마에 주황색 저고리를 구색으로 맞춰 입은 여배우의 예쁜 자태처럼 적당한 가을비와 이슬은 가을을 조화롭게 색칠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환희에 들떠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들고 가을 신명에 사로잡혀 그 단풍 속에 흠뻑 빠지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도록 만든다.
 
 가을 안개는 분장을 더 돋보이게 하는 보조 분장사이다. 가을 안개는 여배우의 얼굴에 부드러운 터치로 분칠을 해 주는 분장사인 것 같다. 옛날에는 딱 분, 요즈음은 파운데이션의 부드러운 깃털을 콧잔등과 이마에 두드리고 문지르면 얼굴이 환해지는 여배우의 얼굴들처럼 보드라운 안개가 몇 번 스치고 지나가면 계곡의 가을 색은 더욱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채색되어 간다.
 
 서리는 사랑의 미련인 듯 아직도 남아 있는 녹색 풀빛마저 앗아가는 마지막 분장사이다. 여러 번 등장과 땀으로 흐릿해 진 여배우의 이목구비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선명하게 해 주는 분장사이기도 하다. 여배우의 마지막 짧은 연기를 위해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다시 한번 눌러 바르고 검은 눈썹을 다시 한번 칠해 주는 마지막 분장사이다.
 
 여배우는 안다. 마지막 분장사가 엑센트 강한 분장을 하고 난 뒤 마지막 연기를 하면 이제 곧 연극이 끝난다는 것을 그리고 거친 숨을 진정시키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현실은 차디찬 이별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시간, 바람이 심해지고 아름다운 단풍이 떨어져 서걱거리는 낙엽이 되어 사그라지는 계절, 그 쓸쓸한 계절이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을 여배우는 안다.


저작권자 새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