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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행복 찾아 함께 떠나는 여행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3.07.04 16:15 수정 2023.07.04 16:15

한지영(율곡고 심리학 교사)

↑↑ 한지영
7월입니다. 지난 주말, 지인의 딸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봄날의 햇살 같았던 신부의 성장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우리 딸이 결혼하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마음까지 오롯이 드러낸 신랑의 싱글벙글 표정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첩장에 새겨진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란 글귀가 인상 깊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는데 심리학과 교수였습니다. 신부는 한의학 전공을 살려 틈틈이 봉사를 실천하던 마음까지 예쁜 아이였습니다. 돌고 돌아 조금은 늦은 나이에 만난 인연이지만 천생연분이었습니다. 봉사라는 아름다운 길을 이제는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길 응원한다는 혼주의 축사가 하객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심리학’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신랑을 직접 찾아가 꿈 너머 꿈이 너무 멋지다는 덕담을 건넸습니다. 또, 두 사람이 함께 갈 인생 여행이 매 순간 행복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확신도 주었습니다.

인생 100세 시대, 이제는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 흐름에 발맞춰 필자도 이른 명퇴를 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도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직장인으로서 보낸 시간을 기반으로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일을 드디어 찾았는데 최종 선택하는 과정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상담사와 심리학 교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가족회의 시 Y고 졸업생인 막내의 적극적인 권유로 심리학 교사를 선택해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3월 첫 출근 하던 날, 막내가 후배들에게 행복을 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어 달라는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Y고는 특별한 학교입니다. 7년 전 늦둥이 막내가 16살 나이에 진학 실패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후 선택한 Y고에서 막내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아픔을 치유했고 행복한 고교시절을 보냈습니다. 현재는 그때 충전한 긍정의 기운으로 자기 몫을 다하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은 대부분 인간관계 속에서 펼쳐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Y고 학생들과의 만남이 귀한 인연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는 수업을 만들어 가리라 매일 다짐합니다.

막내의 당부까지 마음에 담고 새내기 교사의 자세로 첫 수업을 했습니다. 심리학은 자기 이해와 인간 이해를 추구하는 자기 성찰의 학문이라 소개하며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부탁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시간이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수업 목표를 ‘행복’으로 설정했습니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 학업에 지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이름 한 번 더 불러주고, 발표도 한 번 더 시키고, 눈맞춤도 한번 더하며 그렇게 자세히 바라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가끔은 좋은 노래, 좋은 시, 좋은 여행지를 덤으로 소개하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면서…….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에 설렘이 자꾸 따라옵니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됩니다. 가지런히 앉은 모습들이 고3인데도 얼마나 착하고, 얼마나 예의가 바른 지 만날 때마다 칭찬의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기에 지인들이 안부를 자주 물어옵니다. 그때마다 너무 멋진 학생들을 만나 출근길이 매일 꽃길이라고 자랑합니다.

지난주에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주제로 수업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었는데 자아존중감 점수가 유난히 낮게 나온 학생이 있었습니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K였습니다. 제출한 활동지를 살피니 진로와 자아정체성 확립을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나에게 가장 멋진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외할아버지’라고 쓴 답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가족에게 롤모델이 되는 삶 얼마나 멋진가요?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손자에게 멋진 사람으로 비쳐진 그 삶의 여정이 참 멋지게 다가왔습니다. 비록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눈엔 K의 강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빨리 진로를 찾아 능력을 펼칠 수 있길 응원 중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다면 가장 멋진 사람으로 외할아버지를 선정한 손자의 기특한 마음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심리학을 선택한 60여 명의 학생들과 ‘행복 찾아 함께 떠나는 심리학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한 학기가 훌쩍 지나고 있습니다. 장마와 무더위가 함께하는 7월, 이번 주는 Y고의 기말고사 기간입니다. 날씨도 더운데 얼마나 지치고 힘이 들까요. 특히, 고3 학생들에게 이 시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기에 엄마의 마음이 되어 그들과 같이 긴장 상태로 보내고 있습니다. 이 또한 행복 찾아 함께 떠나는 여행의 한 과정이 겠지요. 그 여정에 동행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길을 가다 보면 가시밭길도 만나고 꽃길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Y고 3학년 학생들의 인생 여행길은 무조건 찬란한 꽃길만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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