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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슬픈 가을, 기쁜 가을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1.10.01 16:05 수정 2021.10.01 16:05

이우상(수필가·전 김천문인협회 회장))

천고마비의 풍요로운 가을이다. 하지만 올가을은 코라니 여파가 아니어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도처에 부정 불의 사기 비리가 난무하여 우리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특혜성 논란에 휩싸인 대장동 개발은 무엇이며 듣도 보도 못한 화천대유 회사 사건은 무엇인가. 모 국회의원 아들은 이 회사에 5년 근무하고 받은 퇴직금이 오십억이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알게 모르게 사방에 독버섯처럼 버젓이 횡행하고 있으니 어떻게 동방의 해 뜨는 나라, 백의민족으로 살아왔던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는가 싶다.
라디오 뉴스 듣기도 싫고 TV보기도 짜증난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세상 확 뒤엎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고구마 한 박스 수확해놓고 즐거워하는 선량한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한편 각도를 15도쯤 마음을 돌려 너그럽게 기쁜 가을을 생각해 본다. 가을은 그리움이 아니어도 이유 없이 서글퍼지고 마음자리에 바람이 일렁거리는 계절이다. 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매일 집 가까이 있는 고성산을 즐겨 찾는다. 산자락 비탈진 곳에 자그마한 텃밭을 일궈놓고 열대여섯 가지의 농사짓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호미를 쥐고 잡초를 뽑다 보면 한두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산책을 나설 때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에 장갑까지 끼고 걸으면 알아보는 사람이 적어서 좋다. 살다 보면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되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요즘 같은 가을 산책길은 혼자가 더 좋다. 산길을 30여 분 걸어 텃밭에 도착하면 온갖 채소들이 즐겨 맞는다. 올해는 몇 년 전에 지은 원두막을 리모델링하여 장판을 새로 깔고 커텐도 쳐놓고 의자 몇 개도 갖다놓았다. 독서대도 마련하고 책꽂이를 만들고 책도 십여 권 갖다 놓았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차와 커피, 컵라면까지 마련해 놓았으니 남이 볼 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인생 제2막을 즐길 수 있는 소박한 별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틈만 나면 등산도 즐기고 텃밭 가꾸는 일에 살맛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지간한 B급 친구보다 텃밭이 더 낫다고 혼자서 중얼거릴 때도 있다. 텃밭은 언제라도 내가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지만 친구는 그쪽 형편이 허락해야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독에 잠기기도 한다지만 가끔은 괜히 무료해지고 알 수 없는 외로움에 잠겨 정신적 고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꽤나 행복한 고독을 누리고 있다고나 할까?
산길을 혼자 가을빛 곱게 물들어가는 그 아름다운 자연 속을 뚜벅뚜벅 걷다보면 하늘도 만나고 갈바람도 만난다. 길섶에는 오뉴월 땡볕에 크게 자란 억새풀이 부러질 듯 가녀린 몸으로 하늘거리며 움츠리고 높디높은 청명한 하늘엔 누군가 하얀 물감을 듬성듬성 찍어놓아 한껏 가을 멋을 부린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가을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일컫고 있는 것 같다. 가을을 제일 먼저 느끼는 건 내 팔뚝이다. 여름 끝자락에서 갈바람이 찾아들면 탱탱해 있던 팔뚝 살갗이 윤기를 잃는다.

가을은 계절에 민감한 사람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시절에 무딘 사람도 시인이 된다지만 소슬바람 불고 하늘이 높아지면 결실의 계절인데도 마음 한편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놓친 듯 허허(虛虛)로와지는데 어느새 시속 70Km를 달린다는 칠순을 넘기고 80km의 팔순을 향하여 달리는 나이! 그동안 많은 세월을 보듬었기에 가을이 오고 가는 것을 뛰어넘어 매사에 초연해지려고 하지만 오히려 초조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조 때 부제학(副提學), 형조판서(刑曹判書)를 지낸 조명리(1697년생)가 깊어가는 가을 어느 날 이렇게 읊었다.
“설악산 가는 길에 개골산 중을 만나
중다려 묻는 말이 단풍이 어떻더냐?
이 사이 연하여 서리치니 때맞았다 하더라.”
개골산(皆骨山)은 금강산의 옛 별칭이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금강산의 단풍구경을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어찌 나만의 소원이겠는가. 
가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의 구슬픈 가락이 들려온다.
“님 가신 강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떠나간 내 님이 보고 싶어요.”

내 인생의 가을도 이렇게 깊어만 가고 있다. 산자락 텃밭에 여름 내내 풍성한 오이를 제공해 주던 오이 줄기들이 바싹 말라 어지럽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애처롭고 을씨년스럽다. 지난겨울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거름을 만들어 흙과 함께 섞어 그 위에 오이를 심었더니 고맙게도 싱싱한 오이를 아마도 백여 개 이상이나 따 먹었지 싶다. 물론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선심도 썼다. 오이를 기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수십 개의 꽃 중에서 한 꽃만이 오이가 맺도록 주위의 나머지 꽃들은 기꺼이 양보를 한다. 각자가 알아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열린다. 그리고 아래 줄기에 달린 잎들은 사명을 다하면 위쪽 줄기의 잎들이 무성하도록 스스로 말라 죽는다. 이런 위계질서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잘 지킨다.

이제 고마운 오이 줄기와 참깨, 들깨, 고사리대도 이 가을에 걷어치워야 한다. 쪽파도 월동 잘할 수 있도록 북을 주고 도라지와 더덕 줄기, 넝쿨딸기도 손질해야 한다.
내년 봄에 파릇파릇 싹을 피울 수 있도록 손을 봐야 한다. 지난여름에 여동생 내외가 사다준 잉꼬가 부리를 비비대며 사랑을 만끽하고 마른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가 깍깍거리며 꽁지를 치켜들고 울어 댄다. 내 년에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에 들뜬 마음으로 올 가을을 마무리하고 있으니 슬픈 가을을 기쁜 가을로 승화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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