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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집으로 가는 길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1.02.01 09:06 수정 2021.02.01 19:28

윤애라(시인·율곡동)

발끝에서 흙먼지가 꽃을 피운다. 한 걸음 뗄 때마다 한 송이씩 폈다 지는 먼지 꽃. 정돈이 잘 된 인도에 흙먼지는 과한 표현이겠지만 나는 걸을 때마다 그 꽃들을 보곤 한다. 일부러 흙길을 골라서 걷기도 하는데 그때 피는 꽃은 제법 크다.

율곡동으로 이사 온 후 가끔씩 시내에서 집까지 걸어간다. 시내라 함은 내가 다니는 큰 마트와 병원이 있는 자산동이다. 처음에 무작정 걸어보려고 나섰다가 지좌동 즈음에서 기진맥진한 채 택시를 탔었다. 그 후로는 걷다가 힘들면 미련 없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슬쩍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시작은 옹골차게 했으나 나중이 미미하니 부끄러운 것이다. 그러나 시내에서 집까지는 걸음 수로 만 천여 걸음, 시간은 한 시간 반쯤 걸리니 꽤 먼 거리이고 함부로 결심하기에는 적잖이 힘든 일이다.

자산동을 지나면 삼각 로터리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 목적지가 없는 길은 얼마나 캄캄했던가. 누군가 선택해 준 길, 내가 없는 그 길 앞에서 머뭇대면서 젊음이라는 로터리를 빙빙 돌곤 하였다. 삼각 로터리 엉덩이를 돌아 모암동과 용머리길을 지나면 김천교가 펼쳐진다. 생활이 글이 될 짬 없이 바쁘게 걷다가 어느 여름 밤, 어둠을 파먹는 별을 보고는 꿈이 아직 남아있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바삐 걸어왔지만 다리 초입에 들어서면서 나는 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이성선 시인의 시구,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허공에 뜬 다리는 정말 외롭고 슬퍼 보인다. 그래서 다정하게 혼잣말을 건네며 위로하듯 천천히 김천교를 지난다. 어쩌다 왜가리의 식사를 감상할 때도 있다. 이 다리는 분주한 세상에서 잠시 동떨어져 있다. 누가 불러도 그 소리가 내게 닿지 못할 것 같은 나만의 진공 속에 갇힌다. 성의길에서부터 동부초등학교가 있는 공절길을 지나기까지는 약간의 오르막, 보폭을 짧게 하며 바삐 오른다. 어느 어른의 굽은 등을 딛고 가는 것 같아 빨리 지나가고 싶은 오르막! 아들이 다녔던 중학교 근처는 까치산길이라는 어여쁜 이름으로 지저귄다.

지좌동은 뱀처럼 길다. 카페와 빵집이 놓인 한마음길을 지나면 왼팔을 뻗은 무실 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여기가 가장 생각이 많은 곳, 계속 걷느냐 버스를 타느냐 머릿속은 두 갈래 길에서 헤매게 되는데 이때 걷고자 결심을 하면 몸은 이미 집에 도착한 듯 성취감을 가지는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과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그동안 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무작정 따라 걷기도 하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선택되지 않은 그 길, 가지 않은 그 길을 그리워하며……. 그러나 어둠을 파먹던 별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는 프로스트 시에 내 마음을 붙인다.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는 황홀한 고백을 내 삶에다 할 것이다.

무실삼거리를 지나면 버스 정류소는 까마득하고 택시도 잡기 힘든 곳, 그래서 걸어야 한다. 인적은 드물고 오가는 차들밖에 없는 외로운 길을 발끝의 흙먼지 꽃을 보면서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뻗은 농로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일부러 골라 걷는 흙길은 마치 나만 아는 비밀인 양 설레어 누구에겐가 이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노래를 부르곤 한다.

윤동주 시인에게 새로운 길은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 나의 길 새로운 길’이었다. 지치고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또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이라 여기고 걷는다. 농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율곡동이 시작되며 저만치 내가 사는 집이 지친 나를 안아준다.

코로나19로 잃어버린 것 중 가장 큰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명절 전이면, 집으로 올 가족들 생각에 얼마나 설레었던가. 그리움으로 몇 달째, 아들들은 집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간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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