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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간호사 면허증을 다시 찾던 날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0.08.24 17:06 수정 2020.08.24 17:06

한지영(숭산초등학교 간호사)

2020년 2월 29일 명예퇴직을 했다. 3남매의 엄마로서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에 자신도 직장을 졸업하는 것이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던 1990년 1월 15일 사회 첫발을 내딛었다. 그 후 임상 간호사로 5년, 초등학교 보건교사로 25년, 그렇게 30년 세월을 쉼 없이 달려왔다. 오랜 직장 생활을 매듭짓는 날이 다가오자 만감이 교차하였다. 병원에서 만났던 환자들에게 좀 더 친절할 걸,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할 걸 그렇게 아쉬움과 후회도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규칙적인 일상을 벗어나 늦잠도 잘 수 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여유롭게 차도 한 잔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참 잘한 결정이라고 스스로 칭찬해주었다.
좋은 인연으로 만나 행복한 퇴직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직장인으로서 가졌던 마음까지 모두 내려놓은 채 마지막 근무지를 떠나왔다.

그런데 2월 말부터 대구‧경북지역에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전국의 의료진들이 대구‧경북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집에서 한가로이 있는 게 사치로 느껴졌다. 어딘가로 의료봉사를 가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보건교사 미배치교에 간호사를 채용하니 지원해보라고 했다.

퇴직 후엔 필요한 곳으로 봉사활동을 다니겠다는 계획도 세운 터라 그 학교로 전화를 했다. 담당자는 반가운 음성으로 교통이 불편한 시골 학교라 지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꼭 와달라고 부탁했다.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자 자리였다. 제출 서류를 살펴보니 간호사 면허증이 있었다. 책상 서랍 어느 곳엔가 넣어두었던 간호사 면허증을 찾았다. 1990년 4월 7일 당시 보건사회부장관 명의로 발급된 그 면허증은 어느새 누렇게 빛이 바래 있었다.

문득 간호사 면허증 취득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던 간호학과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를 추억하니 좋은 기억보다 힘들었던 순간이 더 많이 생각났다. 적성에 맞지 않아 갈등이 많았던 그 무렵 학교 강당에서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있었다. 이는 기본 이론 교육을 마친 간호학과 학생들에게 임상실습을 나가기 전에 간호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심어주기 위해 거행하는 성스러운 행사이다.

불 꺼진 강당에서 선배가 밝혀준 촛불 하나를 가슴에 안은 채 간호학과장님의 말씀을 듣는데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끄러움에 살짝살짝 눈물을 훔치니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당시 우리 과엔 하고 싶은 공부를 뒤로 한 채 어쩔 수 없이 전문대 간호과를 선택해 온 동기들이 많았다. 나도 그랬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J교육대학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 석 자를 찾지 못했고 재수할 형편이 되지 않아 그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렇게 할 수 없이 선택한 간호과였기에 방황하며 자퇴를 할까 갈등도 많았다. 스무 살의 가을이 한창이던 그날 80명의 동기생과 함께 촛불을 받아 들었던 그 ‘나이팅게일 선서식’이 마음을 새로이 다지게 했다. 그 후 마음이 따뜻한 간호사가 되리라 다짐하며 열심히 공부했고 간호사 면허증을 가슴에 안을 수 있었다.

현재 간호학과는 인기가 높은 학과이다.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하면 100% 취업이 됨과 동시에 병원뿐 아니라 여러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 임상 간호사를 비롯해 보건소, 소방서 등의 공공기관에서도 근무할 수 있고 의료기기업체, 일반기업체 의무실 등으로도 갈 수 있다. 또한, 대학 교수로 임용될 수 있으며 초·중·고등학교에서 보건교사로 근무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후조리원, 어린이집, 간호학원 등의 창업도 가능하다.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한 지 어느새 30년이 되었다. 여러 분야 중 나는 정신과 병동에서 간호사 경력을 쌓은 후 보건교사가 되었다. 비록 자신이 간절히 원해서 간호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길을 걸어온 시간들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지난 세월 동안 간호학을 통해 배운 것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살 수 있어 행복했다.

현재 나는 S초등학교에서 간호사로 다시 일하고 있다. 아침 8시 전에 출근하여 체온계를 비롯한 방역물품을 준비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보건교사로서 근무할 때와는 또 다른 환경이기에 마음가짐도 새롭다. 현관 입구에서 학생들을 반갑게 맞으며 한 사람 한 사람 눈 맞춤을 하면서 건강을 확인하는 이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코로나19가 또다시 확산되고 있는 요즘 비록 하루 3시간의 짧은 근무시간이지만 필요로 하는 곳에서 도움이 될 수 있기에 즐겁게 하고 있다. 간호사 면허증으로 지난 30년을 일했지만 단 한 번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었다. 새로운 일자리에 이렇게 또 쓰임이 있으니 새삼 고맙고 귀한 면허증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간호사 면허증 취득을 위해 열정을 쏟았던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며 고마운 마음으로 오늘도 ‘파이팅’ 해야겠다. 코로나19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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