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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돈의 가치기준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0.07.28 06:25 수정 2020.07.29 06:01

최운정(서예가)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19의 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지급되어 너나 할 것 없이 요긴하게 사용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생겼다. 돈!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하면서도 가장 가치 없고 더러운 것일 수도 있는 것이 아마도 돈일 것 같다. 죽어 가는 생명도 돈이면 살릴 수 있고 어떤 어렵고 큰일이라도 돈이면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위력이 엄청나다. 명예도, 권력도 지식, 종교, 예술도 돈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어디 그 뿐이겠는가? 돈 때문에 빚어지는 비극 또한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독살하는 사건들이 세계 도처에서 끊이질 않는 것을 보더라도 돈의 존재는 그 가치 면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신(神)과 같은 우상(偶像)으로 군림해 왔다. 그런데 그 돈에 대한 가치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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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두메산골에 마음씨 착한 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흉년을 당하여 도저히 그 곳에서 살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이웃으로부터 얼마간 빚을 내어 부모님께 맡기고 도시로 돈벌이를 떠났다.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5년간을 막노동판에서 피땀 흘려가며 갖은 고생을 다한 끝에 오백 냥이라는 귀하고도 귀한 거금을 손안에 넣게 되었다. 이 정도만 되면 부모님을 모시고 편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꿈에도 그리던 귀향길에 올랐다.

몇 날 몇 밤을 지새우며 산과 강을 넘고 건너 마지막 고개를 넘기 위해 어둠이 깔린 산 속 오솔길로 집어들 무렵 난데없는 산적을 만나게 되는 운명에 접하고 만다. 갑자기 나타난 산적들은 청년의 앞길을 가로막고 위협을 주며 피땀 흘려 모은 500냥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빼앗아 버렸다. 애걸복걸했지만 소용없었고 다만 불쌍히 여긴 두목의 배려로 목숨은 겨우 건지고 다만 녹슨 칼 한 자루를 얻게 되었다. 남은 고갯길을 넘으면서 어려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어딘가에서 빼앗은 쓸모없는 칼을 청년에게 주었던 것이다.

허탈한 마음으로 처절하게 고개를 넘어 집에 돌아온 청년은 삶을 포기하기에 이르게 되고 몇 날을 애통해 하다가 녹 쓴 칼이라도 처분하여 몇 푼 건질 생각으로 시장에 가지고 나갔다. 왼 종일 기다려도 칼을 사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더니 해질 무렵 귀골 풍의 서울 선비가 나타나 그 칼에 대해 남다른 호기심으로 어루만지며 살펴보더니 “얼마를 받겠느냐?”라고 묻는 것이 아닌가? “그저 선비님의 처분에 맡기겠습니다.”했더니 천 냥을 선뜻 내놓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뜻밖의 값을 받은 청년은 꿈인지 생시인지를 몰라 한참을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겨우 진정하여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엄청난 돈은 따지고 보면 산적의 돈이 아닌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의기양양하게 그 길로 산 속으로 달려가 산적 두목을 불러내 자초지종 이야기를 하고 오백 냥을 되돌려 주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을 당한 도적들은 이 청년의 행동에 너무나 감동하여 개과천선(改過遷善)하게 되고 청년은 그 돈으로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의 칭송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어떻게 보면 하찮은 고사(故事) 한 도막이지만 황금만능주의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겠다. 아마도 돈의 가치 기준에 대한 분명한 선을 그어주는 얘기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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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장군의 부모님께서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했다. 불의(不義)의 황금은 돌보다 못할 경우도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옛 조상들은 일찍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사상을 몸에 익혀 돈에 대한 올바른 가치인식을 다져왔던 것이다.

물질만능, 황금만능주의 현실에서도 평생 삯바느질로 모은 수억 원을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는가 하면,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 받은 보상금 전액을 사회에 기부하는 등 더불어 사는 세상에 이렇게 우리 주위에서의 훈훈한 인정을 베푸는 이들이야말로 돈의 가치에 대한 기준을 재조명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일부 망국적 과소비 사치성 향락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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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려 모은 몇 만원은 남을 속이고 사기 쳐서 얻은 수 천만 원보다 더 가치 있고 떳떳하며 해마다 연말이 되면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각계각층의 행사에 고사리 손으로 한 푼 두 푼 모은 돼지저금통을 비워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찡해 옴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 했던가? 이 세상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돈은 필요하게 되어 있다. 다만 그 돈이 어떻게 들어 와서 어떻게 사용되었는가가 문제이다. 돈이 반짝 반짝 가치 있게 쓰지는 세상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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