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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칼럼- 봄날 같은 사람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5.09.21 19:49 수정 2025.09.21 19:51

한지영(율곡고 심리학 교사)

인생 100세 시대. 이제는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 가지 직업에 머무르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 새롭게 도전하며 명함을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어느새 네 번째 명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90년 1월 3일, Y대학병원 정신과 병동의 햇병아리 간호사로 첫 명함을 만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환자들과 함께한 5년은 사회인으로서 삶의 자세를 배우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결혼과 함께 퇴직했지만, 간호학과 시절 품었던 꿈을 꺼내어 도전했고, 보건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94년 12월 24일,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발견했던 순간은 지금도 생애 최고의 기쁨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꿈을 이룬 성취감은 제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20년 2월 29일, 25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며 인생 2막을 열었습니다. 윌트 디즈니가 말한 “모든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그것을 쫓을 용기만 있다면.” 이 문장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정신과 간호사와 보건교사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리학 강사가 되었고, 지금은 율곡고등학교에서 3년째 심리학 수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2년 3월 2일, 심리학 교과서를 펼쳐 고3 학생들을 처음 만났던 날의 설렘은 지금도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올해 제 강의실은 학교에서 학습 환경이 가장 잘 마련된 시청각실입니다. 얼마나 좋은지요. 3월 6일, 가호의 노래 ‘시작’으로 첫 수업을 열었고, 70여 명의 학생들과 처음 만났습니다. 올해 3학년은 유난히 반듯하고 활기차서, 출근길이 꽃길처럼 느껴집니다. 첫날, 이 시간이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의 꿈을 소개했고, 저 역시 “시청각실로 오는 여러분의 발걸음이 행복해지도록 돕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전했습니다.

봄꽃이 예쁘게 피었지만, 고3이라 그 꽃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던 4월. ‘봄날 같은 사람 찾기’라는 주제로 수업을 했습니다. 이해인 시인의 ‘봄날 같은 사람’을 읽고 자신에게 그런 존재를 찾아 이유를 적게 했습니다. 가장 많은 대답은 ‘엄마’였고, “그냥 우리 엄마니까”라는 말에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글이 있었습니다. 영화 촬영감독이 되어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겠다는 꿈을 가진 J의 이야기였습니다.
“저에게 봄날 같은 사람은 5학년 때 담임이신 정규식 선생님입니다. 공부하는 방법과 신뢰의 가치를 알려주셨고, 저도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을 다시 만난 날,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고 싶어 꿈을 향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며칠 뒤 J는 ‘어른의 꿈’을 주제로 저를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직접 장비를 세팅하고 촬영에 몰입하는 모습이 무척 든든했습니다. 언젠가 J가 레드카펫 위에 서 있을 장면을 떠올리며 함께 이야기했고,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격려를 건넸습니다. 그날, 60대 이후의 제 꿈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의 다음 꿈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 마약류 예방교육 강사가 되어 학생들의 꿈을 지켜주는 사람.”

저는 또 하나의 새로운 꿈을 품었습니다. 요즘 10대를 대상으로 마약류 범죄가 늘고 있습니다. 10대가 무너지면 곧 대한민국이 무너지기에, 그들을 지킨다는 각오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 명함에 그 꿈을 담기 위해 돋보기를 쓰고 강의를 들으며 노트에 적어 내려가는 시간이 제겐 또 다른 행복입니다.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9월, 수시 원서 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치열한 고민을 곁에서 지켜보며,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 꿈을 향해 나아가길 응원했습니다. 그리고 수능을 앞둔 3학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간 또한 너희 인생의 단 한 페이지일 뿐이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즐기는 마음으로 걸어가자.”

우리 아이들의 꿈이 어느 무대에서든 꽃처럼 피어나 세상을 향기롭게 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꿈 또한 따스한 봄날처럼 빛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오늘도 다짐합니다. 제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의 꿈을 향한 여정에 봄날의 바람처럼 따스히 동행하리라.

누군가의 꿈을 지켜주는 순간, 우리 또한 그에게 봄날 같은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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