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 적 우리 동네는 밤나무가 없었고 따라서 밤이 귀했다. 증조부 산소 옆에 한 그루가 있었으나 수확량이 적어서 제사상에서나 볼 수 있었다. 명절 차례상에 올려지고 나서야 할머니가 주시는 밤을 한두 개 먹을 수 있었다. 아침 이슬에 젖으신 아버지께서 밤송이를 바지게로 따오시면 집게로 밤송이를 벌려 밤을 꺼냈다. 벌레 먹지 않은 깨끗한 것만 골라서 부엌 흙바닥을 파고 고운 모래로 묻어 갈무리하셨다. 벌레 먹은 밤은 할머니가 화롯불에 구워서 벌레 먹은 곳을 잘라내고 손주들 입에 넣어주셨다. 이듬해까지 종갓집 제사 때마다 부엌 바닥에서 한 움큼씩 꺼내어 뽀얗게 깎아 제사상에 올렸다. 단단한 겉껍질을 벗기고 속 껍질까지 벗겨야 먹을 수 있는 밤. 까기도 힘들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요즈음 아이들은 밤을 잘 먹지 않지만 제사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참 귀했던 밤이다. 사람 손이 가지 않은 아름드리 밤나무 아래서 알밤 줍는 일은 나에게 가을 최고의 놀이고 힐링이고 운동이다.
다람쥐, 청설모 산짐승들의 겨우내 식량이지만 옛날부터 사람과 나누어 먹고 살았으니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되리라. 도토리만 한 토종 밤을 한나절 주워 모으니 양이 제법 많다. 요즘에는 부엌 바닥이 아닌 김치냉장고에 넣어 두면 서너 달은 족히 보관이 가능하다. 예순 중반의 옆지기와 옛 이야기할 때 좋은 주전부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