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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종합

삶의 향기- 임인년의 다짐 그리고 계묘년의 소망

새김천신문 기자 입력 2022.12.28 21:19 수정 2022.12.28 21:19

백승한(수필가‧순천제일대 교수)

임인년(壬寅年)을 맞아 흑호(黑虎)의 기운으로 달려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에 다가왔다.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무엇보다 코로나 일상회복으로 진정한 뉴노멀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새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용산시대 개막, 세계에서 7번째 독자 개발로 우주시대의 문을 연 누리호 발사 성공,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가 칸 국제영화제, 미국 아카데미상에 이어 에미상까지 받으면서 문화 선진국 대열에 합류 그리고 얼마 전 월드컵 16강 진출의 감동 등 여느 해보다 희망찬 뉴스가 넘쳤었다. 하지만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북한의 ICBM 등 연이은 미사일 무력도발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가 고조되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정세 불안으로 인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해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던 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게 가장 큰 헤드라인은 아내와 둘 만의 오붓한 여행이었다고 단연코 자부한다. 뭐가 그리 바쁜 일상인지 결혼 27년차가 지났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한 신혼여행 이후로 둘만의 여행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니 가족과의 여행도 손꼽을 지경이다.

올해 초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왔다. 그렇게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는 아내에게 하필 큰 병이 찾아 온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게 수술 휴유증이 채 사라지기도 전 한 여름에 다시금 수술대 위에 오르게 되었다. 만사를 제치고 아내 곁으로 달려갔지만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병간호도 서툰 내게는 허락되지 않아 병원 밖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위로하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힐링여행이었다. 다행히 퇴원하던 차안에서 아내는 흔쾌히 허락을 했다.

8월에 약속한 여행은 회의와 휴가를 겸한 하이브리드 여행을 기획하다가 겨우 12월이 되어서야 성사되었다. 겨울 제주 바다를 둘이서 드라이브했다. 나도 아내도 이런 자리가 어색해서인지 처음에는 관련도 없는 정치부터 문화까지 주절주절 영혼 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부부인지라 차츰 집안얘기, 자식얘기로 깊어지면서 서로의 마음이 터지게 되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같이 보냈건만 이렇게 가까이서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내 머릿속에 머물러 있던 당차고 기운 펄펄 넘치던 아내는 어디 간 데 없고 이제는 세상에 순응하며 평범하게 나이 들어가는 또래의 중년으로 다가왔다.

부부는 같이 울고 웃으며 세월을 나눠야 함이 자명한 이치인데 우리 아내만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무거운 인생의 짐을 아내를 믿고 맡겼다는 것이 자부심이 아니라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고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생존을 위해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사회는 불확실성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으며 불확실한 변화를 포용 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다면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년사 같은 거창한 문구를 들춰내며 새해 다짐을 해본다. 아내를 믿고 또한 맡겼던 안정적인 인생을 벗어버리고 때로는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어쩌면 해보지 않아 불확실한 미래를 개척해 보려 한다.

유명한 철학자 칼 포퍼는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고 했다. 이제 아내와 함께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 볼 것이다.

다산, 성장, 풍요, 행운의 상징이기도 한 계묘년 검은 토끼띠의 새해에는 삶의 가장 일 순위를 아내와 가족에게 둘 것을 다짐하고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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